조희성님의 간증담

굴 속의 은신 생활에서도 하나님이 보호하심을 체험

   ◇ 북한 공산진영 가운데서 기독교인의 집으로 인도

  조심스레 찾아온 그 불빛은 어떤 외딴집 부엌에서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것이었다. 그 안을 들여다보니 한 처녀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살그머니 부엌문을 열고 들어가 그 처녀에게 작은 소리로 말을 건넸다. 순간 뒤돌아보고서는 “어머나!”하고 기겁을 하고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온통 옷과 얼굴은 다른 시체에서 흘러내린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얼룩져 있었기 때문이다.

  또 오랫동안 옥중 생활로 모발이 많이 길어 뒤엉켜 있는 데다 초췌한 모습이었던 고로 누구든지 처음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애절한 심정으로 그간에 사정을 솔직하게 말을 하였다. 자칫 잘못하면 그곳은 인민군의 점령 하에 있는 지역이니 인민군과 한통속인 주민이라면 고래고래 소리치면 영락없이 붙들려 죽을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으로 “나는 서울에서 온 대학생인데 인민군에게 붙들려 감옥살이를 하다가 급기야 서포 뒷동산의 총살 집행을 당하였고, 500명을 죽이는 그 가운데서 이렇게 기적적으로 살아 도망쳐 왔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주셔서 이렇게 살아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를 살려주시면 생명의 은인으로 알고 그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고 애절하게 호소하였다.

  그 처녀의 이름은 이양숙이었고, 평양 여자 사범학교 출신으로 이 사람보다 한 살이 많았다. 하나님이 이끄신 것인지! 다행하게도 그 처녀는 공산치하를 저항하는 교회 목사의 외동 따님으로 기독교 신자였던 것이었다.그 처녀에게는 오빠가 셋 있었다.

  큰 오빠와 셋째 오빠는 목사인 아버지와 함께 산속으로 들어가 비밀리 반공 운동을 하고 있었으며, 이들은 유엔군 비행기가 공습을 해오면 근처 인민군의 무기고와 군수물자 창고, 군부대 위치 등을 무전으로 알려주는 일 등을 하였다. 그런데 둘째 오빠는 노동당 중앙위원으로 김일성의 총애를 받는 진짜 빨갱이었다. 더욱이 그 처녀의 말로는 둘째 오빠가 조금 있으면 곧 집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몸이 부들부들 긴장으로 떨리면서 식은땀이 흐르며 입 안이 말라왔다. 조금 전까지 빨갱이들에게 붙잡혀 사형 집행을 당하고 간신히 살았는데, 또 빨갱이에게 잡힌다면 그야말로 끝장이었다. 그래서 그 처녀(이양숙)가 저녁식사라며 내민 삶은 고구마 두 쪽을 먹고 있을 여유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람은 “성의는 고맙지만 지금은 도저히 먹을 수 없으니 빨리 숨겨주세요.” 하고 간청하였다.이양숙은 불안해하는 이 사람을 데리고 마당 끝으로 갔다.

  거기에는 댑싸리 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을 당기니 가리고 있던 댑싸리 나무가 열리면서 그 속에 굴이 있었다. 굴속에는 요와 이불, 등잔불, 책상 등이 있었고 볼셰비키 당사(黨史) 등 공산주의 이념 서적들도 많이 있었다. 공산치하에서 이런 날이 올 것을 예상하고 이 집 식구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것이었다.

    ◇ 비밀한 굴속의 은신 생활

  이 사람은 굴속에 있는 동안 공산 이념 서적들을 모조리 독파한 후 공산주의는 얼마 못 갈 것을 직감하였다. 왜 그러냐 하면 부유한 사람의 재산을 빼앗아 못 가진 사람들에게 공짜로 나눠주니 처음에는 공산주의를 좋아할지 모르지만 노력 없이 얻은 것은 소중히 간직하지도 못할 뿐더러 밤잠 못 자고 땀 흘려 노력해서 모은 재산을 빼앗기니 능력 있고 재주 있는 사람들도 구태여 힘써 일할 필요성을 못 느껴 일을 게을리 하게 될 것이 뻔한 노릇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사회는 날이 갈수록 일할 의욕이 없어져 점점 경제가 피폐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 공산주의 이론의 허점과 맹점을 파악하여 냉정한 판단력이 확립되었기에, 이후 이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공산주의의 허구성과 모순을 논리적으로 설파하여 많은 사람들을 민주 진영으로 전향시켰다.

  이 사람이 굴 안에서 한 달 가량 생활하는 동안 이양숙이란 처녀는 매일 밤 12시만 되면 도시락을 몰래 두 개씩 갖다 주었다. 그녀는 이 사람이 서울 사람이라 고구마를 못 먹는 줄 알고 비밀리에 교인들에게 연락하여 자신들도 잘 먹지 못하는 비싼 쌀을 걷어서 쌀밥을 해 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날그날의 전황을 쪽지에 적어 같이 보내왔다.

  그래서 이 사람은 굴속에 있으면서도 9·15 인천 상륙과 9·28 서울 수복, 그리고 평양 탈환을 즉각 알 수 있었다. 그러던 중 평양 탈환 소식을 전해 듣고 난 다음날이었다. 갑자기“ 동지! 조동지! 해방됐시요! 나오시라요.” 하며 굴 밖에서 부르기에 불안한 마음을 무릅쓰고 나가보니 대여섯 명의 청년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런데 저 먼발치에는 인민군이 개미떼같이 새까맣게 북쪽으로 도망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상황인데도 평양시와 대동군 일대의 주민들은 집집마다 태극기를 내걸고 국군이 입성하면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외치면서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광경을 목격하고, 정말! 이북 사람들은 겁이 없는 용감무쌍한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