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성님의 간증담

총살당했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다

  한 달 반쯤 지난 어느 날 오후, 인민군들은 뭔가 새로운 명령이 떨어진 듯 분주히 움직이면서 모두들 감옥에서 나오라고 소리 질렀다. 감옥에서 나온 포로들은 햇빛이 너무 눈부셔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갇혀 있어 몸에 기력이 없어서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하였으며, 또 어떤 사람은 기어서 나오기도 하였다.

  그들은 포로들을 운동장에 한데 모아놓고, 한 30분쯤 운동을 시키고 나서 트럭에 태웠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오후에 어디로 데려가는 것일까? 모두들 불안한 심정으로 기어올라 차에 몸을 싣자, 차는 곧 출발하였다.얼마쯤 흙먼지 이는 트럭의 꼬리를 따라 도착한 곳은 평양 서포 뒷동산이었다. 그곳은 서울의 망우리 공동묘지 같은 곳으로 평양시 근교의 공동묘지였다.

  많은 무덤을 지나 동산 7부 능선쯤에 올라가 보니 벌써 거기에 큰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놈들은 우리들을 총살시킨 후 거기다 묻으려는 작정이었다. 포로들을 모두 내리라고 한 다음 열을 맞춰서 줄을 세웠다. 그리고 드디어는 포로 500여 명을 모두 총살시키기 시작했다. 한 번에 열 명씩 세워놓고 총살을 시키는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각 한 사람 앞에 두 발씩 총탄에 맞아 죽어가는 처참한 광경을 생생하게 지켜보게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여자는 총탄을 맞아 죽을 때 모두 뒤로 벌렁 쓰러져 죽지만, 남자들은 전부 앞으로 푹 꼬꾸라져 죽는 희한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윽고 맨 마지막 차례로 이 사람이 서게 되었는데 여섯 명뿐이었다.

(사진출처 koreanwar60.tistory.com)

  말뚝 앞의 큰 구덩이에는 어느덧 시체가 가득 쌓여 있었고, 눈앞에 폼 잡고 있는 총잡이는 불과 30m 전방에서 총구를 겨냥하며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총살대 앞에 서자 아무런 생각도 없이 덤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님, 이 영혼을 맡아 주소서!” 하고 마음속으로 애절하게 기도를 하였다.

  그때는 예수를 증거하다 죽는 것이 순교인 줄만 알았을 때였다. 불현듯 부모님과 가족들 얼굴이 활동 영화필름처럼 찰나에 스쳐 지나가는데,  “탕! 탕!” 하고 두 발의 총탄이 불을 뿜음과 동시에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이 사람은 의식을 잃어 버렸다.

    ◇ 하나님께서 살려줘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정신이 들기에 눈을 떠보니 온통 암흑 천지였다. 도대체 여기가 천당인가 지옥인가? 조금 전에 총살을 당한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감이 오질 않았다. 그래서 내가 살았는지 허벅지 살을 꼬집어보니 아픈 것이 아닌가. ‘어 내가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몸을 뒤척이면서 정신을 차려 주위를 살펴보니, 끈적끈적한 액체 같은 것이 느껴지고 내 위에 시체 두 구가 내리 누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위에는 소나무 가지와 흙이 1~5cm 정도 덮였는데, 다행히 이 사람은 죄수복의 크고 넓은 칼라가 얼굴 일부와 코를 덮은 고로 질식사를 당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 시체더미 속에서 자세히 들어보니 아직 죽지 않은 자의 신음 소리가 났으나, 그 많은 시체 때문에 살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필사적인 힘을 다하여 시체 두 구를 밀치고 일어나서 상처가 있는지 온 몸을 점검하여 보니 다행히 상처는 한 군데도 없었다. 흙과 피에 젖어 죄수복이 더럽혀졌으리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됐지만, 칼라에 총탄이 지나간 흔적으로 구멍 두 개가 나 있었던 것이었다.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리며 생각하기를, 이것은 정녕 하나님께서 살려주신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하였다. 한편으로는 아마도 500여 명을 총을 쏘아 죽였으니 총이 벌겋게 달아 총구의 끝이 약간 휘어져 총알이 빗나갈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도 해 보았다. 하지만 불과 30m 전방에서 쏘았는데 명중이 되지 않은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살려 주시려니까 제일 마지막에 총살을 당하게 하면서 기절하게 하였으리라 가늠해 보는 것이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방향을 알 수 없어서 서둘러 서포 산꼭대기로 먼저 올라가 보았다.

  사방을 빙 둘러보니, 어느 한 방향에서 불빛이 몇 개가 반짝거렸다. 그 불빛을 쳐다보니 유독 한쪽 방향에서 불이 번쩍하며 가슴에 “쾅” 하고 와 닿는 느낌이 있는 고로, “하나님! 저 불빛 나는 곳으로 가라는 말씀이십니까?” 하니 다시 번쩍하고 불빛이 다가와 가슴에 부딪혔다.

  “그래, 그래” 하는 영감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불빛 나는 곳을 향하여 어두운 산길을 조심스레 내려왔다. 그 불빛을 좇아가는 도중에 간간이 인민군 기척이 나면 어둠 속에 몸을 감추었다가 지나가면, 또 이동하고 하여 불빛 나는 곳으로 접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