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성님의 간증담

참혹한 죽음의 현장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 없을 정도로 고난과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어야 했다

    ◇ 죽음의 두려움과 불안

  전쟁이라는 상황은 너무나 비참한 것이었다. 끌려가는 길목마다 죽은 시체가 즐비하게 널려 있는데, 그 모습이 너무도 참혹하였다. 아기를 업은 엄마의 죽음은 끌려가는 사람 모두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어미는 죽었는데 아기는 엄마를 부르며 눈이 붓고 목이 쉰 상태로 “으앙으앙” 울고 있는 것이었다. 비행기 기관총에 맞아 널브러져 죽은 군인들의 시체, 인민군들에 의해 무차별 학살당하여 아무렇게 던져진 양민들의 시체, 그 죽음들은 각양각색으로 산 사람의 가슴에 미어지는 아픔으로 부딪쳐 오는 것이었다.

  포탄으로 폐허가 된 도시와 마을, 시체로 널려있는 들판을 지나 그렇게 먹지도 못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북으로 끌려갔다. 하루 이틀만 잠을 안 자도 피곤하여 비틀거리는 법인데 놈들은 원산까지 가는 한 달 내내 그러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너무 졸려 견딜 수가 없어 철삿줄에 매여 가면서도 졸았다.

  졸면서 걷다가 걸음을 비틀거리든지 하면 따발총으로 쏘아 여지없이 죽여 연결된 쇠줄로부터 풀어서 아무렇게나 버렸다.나이 스무 살에 참으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을 보았고, 죽음보다 더한 연단을 받았던 것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보다 더 처참한 상황이 없을 정도로 고난과 죽음의 고비 고비를 넘어야 했던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굶주림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 가녀린 생명의 끈을 붙잡고 원산에 도착하니 놈들은 일을 부려먹기 위해 주먹밥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는 좀 살만 했으나 그것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중노동까지 시키니,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도로 고달픈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이렇게 죽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과 공포가 엄습해 왔다. 지금까지 상황으로 보아 틀림없이 종래에는 죽일 것이 뻔한 노릇이었다.

  같이 끌려간 사람들이 대부분 정부의 요직에 있던 사람들과 사회 저명인사이면서 사회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반동으로 낙인찍힌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대다수가 나이가 지긋한 어른 분들이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그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렸고 신분 또한 학생이었다. 같은 포로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사람은 나이도 어린데다 뭘 모르는 학생인 것을 많은 포로들이 안타깝게 여기며 말하기를 “공산주의 빨갱이 놈들이 참으로 지독하니 필시 죽일 것은 뻔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 너는 젊은 나이에 죽기에는 아깝다. 만약 네가 탈출을 시도하여 성공하면 사는 것이고 혹 잘못되더라도 어차피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으니 과감히 탈출을 감행해 보라”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그래도 반공을 해서 그러려니 하겠지만 이제 자라나는 젊은 학생까지 무참히 죽이는 공산주의는 참으로 비인도적이요, 악질들이니 살려줄 것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주위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니 어차피 죽을 바에야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마찬가지니까 이왕이면 탈출이라도 해 보자는 생각에 도망가기로 결심을 굳혔다.

    ◇ 필사의 탈출 시도

  인민군들은 우리들에게 전쟁 물자를 옮기는 일을 시켰다. 밀가루 포대 같은 것을 고개 하나 너머 저쪽으로 옮겨 나르는 운반 작업이었다. 이 사람은 탈출을 결심하고 한 번 밀가루 포대를 메고 중간 고개를 지나 저쪽까지 운반해 보니, 그곳에 보초 한 명이 고갯마루에서 총을 들고 서서 지키고 있었다. 비교적 경비가 허술한 편이었다. 놈들은 감히 포로들이 탈출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이 보초 하나만 처치하면 탈출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포대를 메고 고개에 올라와서 그 인민군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다리에 힘이 없어 비틀거리는 시늉을 하며 다가갔다. 그러고는 “어휴, 힘들어.” 하면서 힘에 부쳐 포대를 떨어뜨리는 척하였다. 포대를 놓는 동시에 벼락같이 그 보초를 발길질로 힘껏 내질렀다.

  이 사람의 발길질에 차인 보초의 총이 보초의 이마를 “꽝” 치자 그 보초는 뒤로 넘어지면서 입에 게거품을 흘리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것을 보고나서 이 사람은 어림잡아 남쪽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음박질을 쳤다.그런데 남쪽으로 도망간다는 것이 그만 방향이 틀려 북쪽으로 가게 되었다. 그 당시는 아직 군에 입대하지 않았던 때라 방향을 알 수 있는 방법을 몰라서 무작정 뛰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