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나 하나가 희생되어 죽는 것이 낫지 온 가족이 몰살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자 말이 안 나오도록 혀를 깨물었다   경찰관인 형의 은신처를 말하게 되면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처지였다. 잔혹하게 매질을 가하는 빨갱이들의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발설할까봐 나하나 죽고 말자는 심정으로 혀를 깨물고 의식을 잃을 때까지 버티었다.   ◇ 인민군들의  감시를 피하여 서울로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을 주민들의 항의로 인민군환영위원회에서 가까스로 석방되어 집에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민군들의 감시와 괴롭힘이 시작되었다. 마을에서 꼭 필요한 모범 청년이자 유능한 청년이라는 것을 안 인민군들은 무슨 대회다, 무슨 모임이다 하면서 찾아와 자기네 일에 협조하라고 성가시게 채근하였다. 그때마다 이런 저런 핑계로 거듭 거절하였다.   그러다보니 정말 이러다간 앞으로 어떤 위험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생각되어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부모님께는 피신하지 않으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니 여기를 피하여야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러고는 서울 흑석동 하숙집으로 피신하려고 자전거에다 보리쌀 한 말을 싣고 김포를 떠나게 되었다. 그런데 노량진 쯤 오니까 유엔군 비행기가 무차별 폭격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 저기 폭탄이 “쾅쾅”하고 터지니 신경을 곤두세우고 하늘을 응시하게 되었다. 그 때, 하늘을 보니 저만치 바위덩어리만한 포탄이 머리 비켜 너머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절체절명의 순간 “저 전봇대를 붙잡아야 산다”하는 생각이 들어 잽싸게 자전거를 버리고 도로변에 있는 전봇대를 날렵하게 부둥켜 안았다.   포탄은 불과 얼마 안 돼는 거리에서 “쾅”하는 소리와 함께 후폭풍과 파편이 쏟아져 날아왔으나 전봇대를 잡는 바람에 위험한 순간을 피할 수 있었다. 포탄이 떨어진 자리는 흡사 큰 연못 정도의 웅덩이가 푹 파였고, 파편과 폭풍과 함께 가까운 건물이 파괴됨은 물론 멀리 있는 건물의 유리창까지 다 박살이 났다. 그때 아마 이 사람이 전봇대를 붙잡지 않았더라면 폭풍이나 파편에 날아가거나 맞아 죽었을 것이다.   ◇ 지방빨갱이들에게 붙잡혀 지하실로   그렇게 아찔한 순간을 넘기고 하숙집을 향해 오는데, 거의 다 올 때 즈음 동네 지방 빨갱이들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빨갱이들은 뒤에서 다짜고짜 총부리를 들이대고는 “너, 조희성이지, 손들어!” 하였다. 이 사람은 두 손을 들고 흑석동 인민군 본부로 끌려갔다. 이 동네 지방빨갱이들이 볼 때, 이 사람은 집집마다 전도를 하고 다니는 열렬한 예수쟁이였다는 것과 게다가 형은 경찰관이니 그들의 눈에는 악질 반동이었던 셈이다.   그 빨갱이들에게 붙잡혀 끌려가는 이 사람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지방 빨갱이들에게 잡혀간 곳은 흑석동 인민군 본부 지하실이었다. 어두컴컴한 지하실 가운데에는 백열등이 달려 있고 밖으로 나 있는 조그만 창에선 희미한 빛이 들어오고 있었지만 싸늘하고 음습하여 공포 분위기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그들은 팔을 뒤로 묶은 다음 네모난 마차 철주를 이 사람의 양쪽 무릎 오금에 끼워 놓고 꿇어 앉혔다.   그냥 가만히 앉아 있어도 너무 아파 비명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들은 이사람이 못 일어서도록 한 사람이 팔 하나씩 양쪽에서 잡고 내리누르며, 또 다른 사람은 구둣발로 무릎과 허벅지를 짓밟았다. 그러면서 큰 소리를 치며 “너의 형이 있는 곳을 대라.”는 것이었다.당시에 이 사람의 친형은 수도경찰국에 근무하는 경찰관이었다.   이 사람이 형의 행방을 말하지 않자 그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곡괭이 자루로 이 사람을 인정사정없이 개 패듯 하는 것이었다. 매질이 너무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너무 혹독한 고문이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때 형님은 김포 고향 집에 숨어 있었다. 이 말을 하게 되면 온 가족이 몰살당할 것은 뻔한 것이었다.   차라리 나 하나가 희생되어 죽는 것이 낫지 온 가족이 몰살당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자, 말이 안나오도록 혀를 깨물었다. “윽” 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피가 터져 유혈이 낭자하자 빨갱이들은 “이 간나새끼 악질 반동이구만.” 하며  여섯 명이 있는 힘을 다해 번갈아 가며 사정없이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쏟아지는 매에 의식을 잃고 쓰러지면 양동이에 찬물을 떠와서 끼얹어 붓고, 꿈틀거리면 또 곡괭이 자루로 사정없이 때리고, 또 찬물을 끼얹고 하여 이 사람이 죽을 때까지 매질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 사람의 온 몸과 팔다리가 마치 개구리가 죽을 때 다리를 떨다가 쭉 뻗어 죽는 것처럼 그렇게 부들부들 떨다가 ‘푹’ 하고 꺼지는 상태가 되었다.   그때서야 그들은 이 사람이 죽은 줄 알고 몽둥이질을 그치고 가마니를 가져다가 이 사람 위에다 덮었던 것이다.이 사람이 그 때의 상황을 어떻게 알았는가 하면, 그 당시에 흑석동 감리교회 이찬영 목사 사모님께서 자기 교회 청년 지도교사가 인민군에게 끌려가는 것을 보고 따라와서 이 사람이 인민군 본부 지하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창틈으로 매를 맞는 광경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다 지켜보고 죽은 것을 보고 돌아가서 이찬영 목사님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 이후, 전쟁이 끝나고 몇 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 이찬영 목사님이 이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면서도 한편 반가와 이 사람의 손을 잡고 “그때 매를 맞고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있느냐 하시면서 하나님을 열심히 믿더니 부활하셨나 보다.”고 하며 그 당시의 일을 세밀히 말씀해 주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