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로 옮겨 외삼촌댁에서 중학교에 다니다   김포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서울로 옮겨 학교에 다니게 되었는데, 당시 성동경찰서 사찰계장으로 계시는 신당동 외삼촌댁에서 형님과 같이 신세를 지며 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아무리 외삼촌이 잘 대하여 주신다고 해도 외삼촌 식구들과 같이 생활하게 되다보면 아무래도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은 아니고 해마다 고향에서 추수를 하게 되면 쌀을 두 가마니씩 외삼촌댁에 갖다 주고, 또 여러 가지 농산물도 챙겨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외숙모님은 형님과 내가 같이 사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다. 때로는 식사하는 것조차 꺼려하고 눈치를 주는 것이었다. 그러한 것을 형님은 못 알아차렸으나 이사람은 그런 표정과 태도를 직접 목격하고, 그 다음날로 외삼촌댁에서 짐을 싸가지고 나와 버렸다. 그 길로 학교에서 자취하며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외삼촌께서 직접 학교까지 찾아와 왜 그러냐고 하시면서 집에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그 내막은 말하지 않고 나름대로 결심한 바가 있어 그렇다고 둘러대고 극구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형님도 찾아와서 몇 번이고 외삼촌 집으로 다시 들어가자고 권유하였으나, 나는 신세지는 것이 싫어 들어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형님은 외삼촌댁에 있고, 나는 고생스러워도 계속 학교 교실에서 생활하였다.    ◇ 눈치주는 외숙모님의 태도에 외삼촌댁에서 나와 낮에는 공부, 저녁에는 장사를 시작하다   그러다보니 생활하는 데 당장 돈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낮에는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방과 후에는 성냥과 비누 등의 물건을 들고 집집마다 팔러 다녔다. 처음에는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집집마다 물건을 파는 것이 부끄럽고 창피하였으나, ‘너 같은 놈은 이렇게 보따리를 들고 다니며 집집마다 물건을 파는 것이 마땅해! 이보다 더한 일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네게는 수월한 것이야’하는 생각을 갖게 되니 별 무리 없이 장사를 다닐 수 있었다. 중학교 시절 모습   하루하루 몸으로 직접 부딪쳐보니 장사하는 것이 이만저만한 고생이 아니었다. 자존심은 마구 구겨지고 힘은 힘대로 들었다. 어떤 경우는 때는 물건을 못 파는 일이 허다했다. 세월이 약일까! 시간이 지나자 점점 장사하는 요령도 생기고 수완도 좋아졌다.장사를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겼다. 서울 시내에서 일정한 구역 내에는 안 들어가 본 집이 없는데, 어떤 때는 담임선생님 댁인 줄도 모르고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때 여선생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맨발로 뛰어 나와 “네가 이렇게 고생하는 줄 몰랐다. 내가 학비를 대줄테니 제발 이런 장사는 하지 마라.”하시며 손에 돈을 쥐어주셨지만 기어이 뿌리치고 나오기도 하였다. 또 어느 때는 부부 싸움으로 기분이 몹시 상해 있는 집에 물건을 팔러 들어갔다가 몹시도 화풀이를 해대는데 꼼짝없이 당해야 했던 때도 있었다.   그나마 화를 내기만 하면 괜찮은데, 장사하는 물건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쳐 물건을 팔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그 때, 그것을 하나씩 줍는 이사람의 마음은 서러움이 복받치고 기막힌 눈물을 흘리는 일도 있었다. 혹독한 추운 겨울에는 남들이 따뜻한 방안에서 쉬거나 잠을 자고 있을 때, 이사람은 찹쌀떡을 들고 골목마다 “찹쌀떡 사려!”하고 외치고 돌아다녔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다녔다. 누가 시켜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서 했으며 자신이 고생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 자살했다 살아나보니 왜 그렇게 무서운지   하루하루 고달픈 생활이 이어지자 그 전부터 ‘사람이 살아봐야 고생 고생하다가 죽는다면 차라리 이렇게 고생할 바에야 일찍 죽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집요하게 따라다녔다. 사람 사는 것이 허구한 날 고통스러울 바에는 이 고생스런 세상 죽음으로 끝을 내리라 마음먹기에 이르렀다.   자살할 결심을 굳히고 한강으로 가서 강물에 빠져 죽기로 마음먹고, 어느 날 오후 한강교 다리 중간 쯤 가서 한강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막상 빠져보니 사람이 본능적으로 살려고 허우적거려지는 것이었다. 때마침 이 광경을 주변 강에서 고기 잡는 어부가 보고 얼른 와서 물에 빠진 이사람을 구해주셨다. 막상 물에 빠졌다가 살아나보니 왜 그렇게 죽는다는 것이 두렵고 무서운지 몸서리가 쳐지는 것이었다.   게다가 우연찮게 이사람을 살린 어부가 하시는 말씀이 “아직 새파랗게 젊은 것이 이렇게 죽으려하다니, 그럴 용기가 있으면 죽을 각오로 뭐든지 하면 안 되는 것이 세상에 어디 있냐”고 하시면서 호되게 나무라고 야단하셨다. 듣고 보니 그 말씀이 옳다고 생각되어졌다.   그래 사람이 해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이 꼭 죽으라는 법은 없지 않겠는가. 그날 이후로 이사람은 자살하려 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갔다. 다시 한 번 생의 의욕을 불태우고, 또 영생에 대한 소망을 품은 채 보다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자세와 의지를 갖고 살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