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린 시절은 개구쟁이며 자기중심적 성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느 아이와 남달리 지혜로운 면과 일찍이 부모님의 고생과 타인의 고통을 가슴 아프게 여기는 효성심이 유별났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궂은 일, 힘든 일을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고 자발적으로 나서서 희생하는 조희성 님의 성품이 특별했다는 것이다.

  어릴 적부터 희생적인 마음,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여기는 성품은 선한 양심의 피가 강하게 흐르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나무도 어린 떡잎 때부터 그 나무가 제대로 자랄지를 가늠하듯이, 한 인간의 인물됨도 어릴 적 성격과 품행의 결과가 그 사람의 앞날에 중요하게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조희성님이 왜 위대한 이긴자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어린 시절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 편집자 주    

  ◇ 일제 강점기 배고픈 어린 시절

  일제 치하 때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배고픈 시절을 보낼 때이다. 봄날 이맘때쯤 되면 보릿고개가 되어서 쌀이 떨어지고 잡곡도 떨어지고 먹을 것이 없는 고로 굶는 것을 부지기수로 하였다. 풀을 뜯어 먹거나 쑥 같은 것을 넣어서 풀띄기 죽을 쒀서 훌훌 마시는, 그거래도 마시면 끼니를 이을 수 있는 거니까 다행이지만 아주 굶을 때도 많았었다.

  이사람의 큰집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편이라 할아버지가 이사람만 특별히 사랑하셨던 고로 사랑방에 불러다가 밥을 꼭 먹이는 그런 일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이사람이 보통 아이가 아닌 것을 짐작하셨던 고로 특별히 이사람을 사랑하시고 잘 보살펴 주셨다.

  그래서 종종 큰집에서 밥을 먹고 돌아오는 경우도 많았다.그러나 어떤 때는 큰집에서 밥을 먹고 오지 않은 날도 있었는데, 집에서는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를 못하는 고로 나는 저녁 식사 때면 큰집에서 밥을 먹었으니 내 죽을 나눠서 잡수시라고 거짓말을 하고 밥을 굶었다. 그러다보니 그런 날은 어김없이 너무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는 것이었다.

  식구들은 다 잠이 곤하게 들어서 쿨쿨 잠을 자는 그 시간에 몰래 일어나서 부엌에 들어가서 물을 실컷 마시기도 하였다. 그것도 성에 안 찰 때는 뒷동산에 가서 소나무 껍데기를 벗겨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배가 고파 산에 올라가서 소나무 껍데기를 벗겨 먹었다는 걸 엄마나 아버지나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하면 어머니 아버지가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는 고로 내가 혼자서 배고픈 고통을 당하면 당했지 내 어머니 아버지 가족들까지 마음 아프게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에 서였다. 일곱 살, 여덟 살 그 어린 것이 밥 먹었다고 거짓말 하고서 그걸 나눠서 잡수도록 마음이 그렇게 희생적으로 움직였다.

  ◇ 주면 반드시 받는다는 교훈을 터득하다

  당시 7살 때인가. 8살 때인가 약간 우스운 얘기가 되겠지만 삶의 큰 교훈을 얻은 일화가 있었다. 음력 정월 초하루 아침 동네 아이들이 설이라고 하여 멋진 때때옷을 입고, 양 손에는 맛있는 떡을 들고 먹으면서 동네 어귀에 모였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너무 가난하여 새 옷은커녕 떡도 못 하여서 먹고 싶은 떡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침만 흘렸었다.

  그때, 번뜩 생각하기를 분명 떡을 달라고 하면 안 줄 것이고 해서, 냉큼 집에 들어가서 쇠로 된 채에다 콩을 짚불로 잽싸게 구워서 양 호주머니 가득 넣어가지고 콩을 먹으면서 다시 그 애들 앞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이 콩 맛있다고 자랑하였다. 그러자 처음에 별 반응이 없던 아이들이 점차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이 콩 먹어봐 하고 다른 아이에게 주니까 양 손에 떡을 쥐면서 먹고 있던 아이가 그럼 이 떡 먹어! 하면서 내주는 것이었다. 당시 어린 나이지만 떡을 그냥 달라면 안 줄 것이니까 반드시 뭘 주면 상대방도 그 보답으로 뭔가를 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일이 있었던 것이다.

  ◇ 어린 나이에 혼자 우물을 파다

  한 번 마음을 먹고 뜻을 세우면 쉽게 포기하지 않고 끝을 봐야 손을 떼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당시 우리 집에는 우물이 없어 늘 어머니께서는 멀리 있는 동네 공동 우물에서 힘들게 물을 길어 오곤 하였다. 집안의 온갖 궂은일과 부엌일과 농사일을 도맡아 하시는 어머니가 멀리까지 가서 물을 길어 오는 것이 너무도 마음 아프게 생각되어 어느날 마음을 다잡아먹고 뒤란에서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그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아침부터 땅을 파내려가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는 어린 것이 뭘 하나 하고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시다가 땅을 계속 열심히 파내려가는 것을 보고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하여 들러서 말리셨다.

  부모님은 몇 번이고 와서 안스러워 하시며 올라와서 밥 먹고 하라, 쉬었다 하라고 했지만,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이사람은 물이 나올 때까지 올라가지 않겠다고 스스로 작정을 하고 했던 것이다. 어린 몸으로 땅을 파내려 가다보니 진도가 느렸다. 한 시간 두 시간 점심 식사도 하지 않은 채 계속 하였다. 저녁이 지나고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 빛나는 한밤중이 되었다.

  이사람 키로 세 배가 넘는 3~4m까지 파내려가자 이윽고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그때서야 땅 위로 올라왔다. 물이 나오기 전에는 허리가 아프고 팔이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어려운 상황과 고통도 많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여 목적한 바를 해내는 집요한 면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