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을 살리는 물, 싱그럽고 자유로운 바람,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처럼 살아가는 자연의 삶. 그것이 바로 지혜로운 처세의 삶, 도덕경이 추구하는 삶이다. 그러려면 먼저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처럼 비워보기를 바란다. 그래야만 그 깊고 오묘한 경지가 되는 노자의 차원 높은 삶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名可名非常名:

  우리가 지금 이름 지어 부르는 이름은 본래의 영원한 세계의 참 이름이 아니라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인간과 우주 만물에게 붙여진 제각각의 이름은 그것이 본래의 실체가 아닌 허상에 붙여진 이름인 까닭이다. 인간과 만물의 본질은 원래는 하나의 세계를 이루고 있었고, 하나의 속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의 모습을 띠었던 상태인지라 굳이 저마다의 이름이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다.

  현상계의 천태만상의 물질계에 붙여진 이름은 본래의 참 존재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참이 아니기 때문에 없다고 하는 것이다. 과연! 만물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마음의 눈(혜안慧眼)을 가진 사람으로서 절로 나오는 말이다.

  자! 그 이유를 살펴보자. 오늘날 최첨단 물리학에서 밝혀낸 사실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최소 단위인 원자의 세계에서는 물질과 비물질 간의 존재가 따로 구분이 없다. 현상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너와 나, 인간과 우주)의 원자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중성자와 양성자(+)와 음성자(-)의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미시의 원자의 세계에서는 너와 나의 구분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물질과 비물질 간의 개념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나같이 미시의 세계에서는 에너지(파장, 중성자)이자 정보(의식, 양성자와 음성자)로만 존재한다는 사실을 오늘날 과학은 입증하고 있다. 이러한 하나의 세계를 비유하자면, 지금 내가 호흡하는 공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와서는 나와 하나가 되고, 그 공기를 내뱉으면 온 우주공간으로 퍼져나간다.

  또 내가 먹는 음식이 자연으로부터 와서 내 몸이 되었다가 그 배설물이 또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론적으로 본질이 같으므로 인간과 만물과 공기가 서로 순환하며 하나의 생명체를 가진 유기체로서 공생공존하게 되므로 근본은 하나이다. 그래서 그 근본의 세계에서는 분별과 차별이 없으니 각각의 “이름이 없다”라고 하는 것이다.

    ◇ 無名, 天地之始:

  바로 이름 붙여 말할 수 없는 세계가 태초의 현상계이다. 곧 이 세계와 삼라만상의 물질이 생기기 전을 말한다. 이를 다양한 각도로 고찰해 보면, 성경 상에서 말하는 혼돈의 상태. 불교에서 말하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상태. 주역에서 말하는 무극의 상태이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보면 우주 대폭발 이전의 순수 에너지 상태로서 과히 이름 붙여 말할 수도 없고, 이름이 없다는 말밖에는 달리 형언이 안 되므로 억지로 구분하여 이름 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쉽게 풀이해 보면, 하늘과 땅이 생기지도 않았고, 너와 나가 따로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인간과 만물도 서로 구분이 없다면 그것에 무슨 이름이 필요하며 무슨 구별이 있겠는가?

  이 시원의 세계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없었으며 음양(陰陽)으로 분화되지 않았기에 생성(生成), 쇠퇴(衰退), 소멸(消滅)이라는 대우주적 법칙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 하나의 세계가 바로 인간과 우주의 모체이자 본향이면서 아름답고 찬란한 빛의 세계로 죽음이 없는 이상향이었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 有名, 萬物之母:

  이름이 있다는 것은 삼라만상 물질계가 존재하게 되었고, 물질계가 탄생되었다면 반드시 그것의 모태가 있을 것이다. 이것에 대한 이해를 폭넓게 해보자면, 성경 상으로 천지창조가 일어난 사건이고, 불경 상으로는 유시유종(有始有終)하게 되었으며, 동양 철학사상의 근간이 되는 주역의 이치상으로 우주 만물과 인간이 존재하는 태극세계(음양의 세계)화가 된 것이며, 과학적으로는 우주 대폭발이 일어나서 형형색색의 물질계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천지창조, 유시유종, 음양의 세계, 우주 대폭발이 모두가 오늘날과 같은 인간과 우주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주역에서 정의하는 무극의 세계는, 과학적으로 만물의 원질을 하나로 설명하는 하나의 상태(一元世界)라고 할 수 있고, 이 무극의 세계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도 없었고, 음과 양이 존재하지 않았고, 밤과 낮의 구분이 없었으며, 남자와 여자, 암컷과 수컷의 구분이 없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진 눈물과 탄식, 괴롬과 고통, 다툼과 죽음 등의 불행이 없었다. 또한 우주는 천태만상으로 분열되어 생성, 쇠퇴, 소멸되어가는 구조가 아니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의 세계가 둘로 나누어진 이분법적 세계(음양세계)로서 상대성 원리가 적용되어지는 세상이 만들어진 것이다. 곧, 영원무궁한 빛의 세계에서 유한한 음양의 세계(물질계)로 전락되어 만물이 탄생하게 됨으로 인해서 이름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만물과 인간에게 분별과 차별의 이름이 주어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간과 우주의 존재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고 깨달아야만 비로소 노자의 삶의 경지에 비로소 입문하게 되는 것이다. 세속에 살되 세속의 삶을 초월하여 솜털처럼 가벼운 몸의 경지와 눈보다 희고 정결한 정신적 고요와 열락을 누리는 대자연의 도(道). 그것이 진정 인간과 천지 만물과 하나를 이루며 사는 도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김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