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존멸을 두고 벌여온 신들의 투쟁」으로 잘 알려진 김우철(본명 강창구) 씨가 새롭게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연재물이다. ‘미래의 신화’라는 글로서  이 말은 고대인이 문명을 건설하면서 인류 최초로 설정했던 이중 구조의 신화적 주제가 부활하여 미래 문명의 성격을 재설정할 것이라는 역사적 고찰을 함축한 표현이다. 독자 여러분들의  관심을 권한다. -편집자 주 ]

  이 세계는 서로 다른 현상과 사물로 이루어져 있지만 서로 다른 기(氣)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모두가 동일한 기로 이루어진, 하나의 몸이요 하나의 에너지요 하나의 우주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의 기로 이루어진 세계가 서로 다른 사물과 현상으로 나뉘어져 조화와 부조화를 일으키는가. 이 세계가 생성되기 이전, 현재의 시공이 열리기 이전, 우주에는 상반된 두 세계가 독립하고 있었다.

  두 세계는 형체가 없는 무형의 세력이었으며, 서로 다른 독자적 질서를 갖추고, 의지와 지능을 지닌 살아 움직이는 존재였다.

  두 세계는 독립되어 있었으나 성격이 정반대였기 때문에 우주의 패권을 놓고 부딪칠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고, 어느 순간 양측 간에는 격렬한 대전쟁이 시작되었다.

 전쟁의 양상은 양측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한쪽에서는 일방적으로 공격하고 한쪽에서는 일방적으로 방어하는, 창과 방패의 전쟁이었다.

공격자의 무기는 암흑과 파멸이었고, 방어자의 무기는 빛과 생명이었다. 무기의 성격상 공격자는 공격력만 지녔고 방어자는 방어력만 지녔기 때문에 일방적인 창과 방패의 전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대신 공격자는 에너지가 적었고 방어자는 에너지가 풍부했기 때문에 대등한 전쟁이었다. 무형의 암흑의 군단은 예고 없이 은밀히 빛의 군단의 방어선으로 접근했다. 빛의 군단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고 경계를 강화했다. 빛의 군단은 더욱 밝아졌고 빈틈이 없었다. 암흑의 군단은 힘으로도 열세였고 공격할 틈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빛의 군단의 방어선에 근접해 있던 암흑의 군단의 최전방이 빛의 군단으로 동화되기 시작했다. 빛의 군단의 세력이 너무 밝아서 일어난 현상으로 보였다. 빛의 군단은 경계를 늦추고 동화된 세력에 대해 열린 자세를 취했다. 그때였다.

  방어선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피아가 불분명해진 순간, 후방에서 아직 동화되지 않은 암흑의 군단의 본진이 동화된 세력을 타고 넘어와 방어선의 빈틈을 찾아 빛의 군단의 내부로 급속히 침투해 들어왔다. 순식간이었다. 동화된 것은 위장술이었다.빛의 군단의 전열은 분열되었고, 분열된 빈틈으로 암흑의 군단이 더욱 확산했다. 빛의 군단의 분열은 전쟁에 필요한 에너지의 공급이 끊어지는 치명적 타격이었다.

 빛의 군사들은 힘을 잃고 암흑의 군사들 속에서 하나 하나 고립되었고, 빛의 군단의 풍부한 에너지는 암흑의 군단의 수중에 넘어갔다. 암흑의 군단은 그 에너지를 자신의 또 다른 무기인 파멸의 에너지로 변화시켰고, 파멸의 에너지는 방어선 안에 있던 모든 생명에 미치기 시작했다. 여기서 발생하는 압력은 극한으로 치달았고, 극한을 넘어선 순간 거대한 폭발과 함께 암흑에 갇힌 빛의 세계, 파멸의 운명을 진 생명의 세계, 곧 엔트로피 증가가 지배적인 현재의 우주가 출현했다.

  <동양 이기론적 관점>

  이 사건을 동양의 전통적 우주관인 이기론(理氣論)의 관점에서 다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이 세계가 생성되기 이전, 만물은 한 덩어리의 氣 또는 에너지 속에 무형의 원형으로 녹아 있었다. 氣 또는 에너지는 소모되는 성질이 없었고, 만물의 원형들 간에는 경계가 없는, 한 덩어리의 무한 절대계이다. 이 세계는 하나의 氣를 하나의 理(질서)가 지배하는 세계였으며, 氣와 理가 일체인 세계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세계를 지배하는 理와 상반된 또 하나의 理가 외부에서 침입했다. 침입한 理와 원래의 理 사이에는 격렬한 대결이 벌어졌고, 침입한 理가 원래의 理를 눌렀다. 대부분의 氣는 그때까지도 원래의 理에 의해 지배되던 영역이었지만 침범한 理는 원래의 理를 누른 직후, 이 세계의 전일성(全一性)을 타고 氣의 전 영역으로 급속 확산하며 새로운 지배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氣의 영역이 새로운 지배자에게 장악되는 것은 시간문제였지만 아직 새로운 지배자는 이질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새로운 지배자와 氣의 영역 사이에는 이질감에 의한 압력이 급상승하기 시작했고, 극한에 이른 순간 기의 높은 에너지는 거대한 폭발로 이어졌다.

  태극(무극)의 음양은 양극의 음양으로, 양극의 음양은 사상으로, 사상은 팔괘로 분화했고, 동시에 만물의 원형도 현재의 형태로 제각각 분화하며 현재의 시공(時空)이 열렸다. 하나의 氣를 오직 하나의 理가 지배하던 一氣一理의 무한 절대계는 새로운 理가 침범함으로써 一氣二理의 유한 상대계로 변화했다.

  무한 절대계는 氣가 오직 하나의 理에 의해 지배되고 氣와 理는 일체였으므로 모든 현상은 간단하고 분명하고 일관되었다.그러나 유한 상대계에서는 氣가 상반된 두 理(질서)의 지배를 받으므로 이율배반과 모순과 부조화가 일어나고, 氣와 理는 일체일 수 없다. 이기일원론-이기이원론 논쟁의 원인도 여기에 있다.*

김우철 / 신들의 투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