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우리는 태풍의 교란현상과 엘니뇨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음을 조심스럽게 점쳐 볼 수 있다. 태풍의 교란현상과 엘니뇨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전체대기순환시스템 안에서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 근거는 다음 두 가지이다.

  첫째, 태풍의 교란현상이 일어났던 동아시아는 아시아 몬순기후에 속하는 지역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아시아 몬순이란 아시아 대륙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계절풍을 말한다. 겨울철에는 시베리아의 찬 대륙성 고기압이 발달하면서 태평양과 인도양을 향해 시계방향의 육풍이 불고, 반대로 여름철에는 아시아 내륙의 더운 저기압을 향해 태평양과 인도양 쪽으로부터 반시계방향의 해풍이 분다. 이 아시아 몬순, 특히 여름 몬순은 엘니뇨 발생과 강한 상관관계에 있다(오재오 1999, C. Donald Ahrens 2001).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태풍의 교란이 엘니뇨 발생에 직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은 적지만 대신 여름 몬순에 영향을 주고 여름 몬순은 다시 엘니뇨 발생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은 크다. 다시 말해 태풍의 교란과 엘니뇨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아시아 몬순을 매개로 하여 양자가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받았을 가능성은 크다.

  태풍의 교란이 현저했던 1997년 당시에 태풍의 진로에 전통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열대 저기압, 아열대 고기압, 알류산 저기압이 모두 동쪽으로 이동했고, 이에 따라 태풍들도 예전보다 좀더 동쪽으로 치우쳐서 북상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연안국들의 피해도 줄어드는 결과를 가져왔다. 주목할 점은 아시아 몬순과 엘니뇨와의 밀접한 상관성을 고려할 때 이들 세 기단의 이동이 엘니뇨 발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아시아 몬순이 태풍의 교란현상과 엘니뇨를 매개했다는 구체적인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태풍의 교란과 엘니뇨 사이에는 시기적으로 관련이 깊다. 우선 엘니뇨는 근년에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먼 옛날부터 있었던 현상이고 1950년 이후로 관측된 것만도 13 차례에 이른다. 그런데 주변 지역에 재앙이라고 할 만큼 크게 성장한 엘니뇨는 1980년대 들어서 발생했다.

  1950년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1950년 관측 이후로는 약 30 년간 별탈 없다가 1980년대에 들어와서부터 인류는 엘니뇨를 재앙으로 경험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동아시아에서의 태풍의 교란현상도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그 이전에는 없던 현상이었다.

  만일 태풍의 교란과 엘니뇨가 간접적으로나마 인과관계에 있다면 전후 상황으로 볼 때 엘니뇨가 태풍 교란의 원인이라기보다는 태풍의 교란이 엘니뇨 발생의 원인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태풍의 교란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1980년대 이전에 발생한 엘니뇨는 재앙이라고 할 만큼 악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1980년대 들어서 태풍의 교란현상과 함께 크게 재앙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기이한 점은 똑같이 1980년대 들어서 나타난 현상이지만 태풍의 교란현상은 재앙이 아닌 반면 엘니뇨는 재앙이라는 점이다. 태풍의 교란현상은 동북아시아 연안국들의 피해를 줄이면서도 열대의 열기와 수분을 추운 고위도지방으로 운반하는 대기순환시스템의 기능에 이상을 주지 않은 현상인 반면 엘니뇨는 갖가지 비정상적인 기상이변을 일으켰다. 어떻게 같은 시기에 인접한 두 기후대에서 상반된 현상이 나타날 수 있을까. 그 해답의 단서는 5장에서 제시될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됩니다.

김우철 / 신들의 투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