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물의 본질은 무형이다

  빅뱅 이전에 만물은 무형(無形)으로 존재했다. 그러므로 만물의 본질은 무형이며, 언젠가 그 본질을 회복할 것이다. 신도 최고의 신은 무형의 신이다. 성경 십계명은 무형의 신인 야훼 외에 형상을 짓지 말라고 했고, 석가도 나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모든 물질과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명시한 것이며, 유형과 무형을 분별하라는 것을 적시한 것이다.

  물질의 기본단위인 원자도 유형적으로는 핵과 전자가 결합되어 있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게 그보다 훨씬 광범위한 무형의 핵장과 전자기장, 무형의 핵력과 전자기력의 물고壘물리는 알력이 존재하고 있다. 그 무형의 알력이 핵과 전자의 결합이라는 단순한 구조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만물의 기본단위인 원자가 그러할진대 만물이 일으키는 모든 현상이 그 양상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요컨대 유형과 무형을 분별하지 않고 동일시하여 현상을 단순화하는 것에서 모든 문제는 시작된다. 이야기를 바꾸어서,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반복되는 것일까. 왜 반복되는 것일까. 무엇이 반복되는 것일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구조나 패턴의 현상이 반복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식민주의는 제국주의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으며, 제국주의는 1차세계대전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었고, 1차세계대전은 2차세계대전의 씨앗을, 2차세계대전은 3차세계대전의 씨앗을 배태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자본주의는 오늘날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불씨를 안고 있었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금융시장 교란 세계화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구기온상승뿐 아니라 폭우, 혹한, 빙하기, 대륙이동, 화산, 지진 등 자연계 이상현상들은 과거 지질시대에도 있었으며, 지구의 내부구조상 이러한 현상들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반복적으로 일어날 것이다. 이처럼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역사적 자연적 초기의 양상이 점점 확대심화되어 왔다는 것이고 현재나 미래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구는 역사적으로나 자연적으로나 혼란의 규모와 강도가 점점 심해지는 길을 걸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의 반복 속에도 가끔 반전이라는 것이 나타났다. 제3차세계대전의 불씨를 안고 동서냉전이 한창 고조되고 있던 1980년대 말부터 구소련과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갑자기 퇴조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그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은 불행한 사태이기는 하지만 북핵으로 인해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제3의 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또 하나의 반전의 계기였다고 평할 만하다.

  지구 기온상승은 지질시대부터 지구의 내부구조상 내핵의 활동에 따라 일정 범위 내에서 오르내리는 기온현상의 일부인데, 이것이 온실기체에 의한 지구온난화와 맞물려 여러 자연재해로 나타나는 것은 또 다른 성격의 반전이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자연계적 악화와 반전의 현상을 인간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또 어떠한 해결방식을 찾아야 할까. 대체로 하나의 사건 또는 현상은 단독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나 현상 이면에서 상황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힘과 부정적으로 변화시키려는 힘이 충돌하고 있다.

  그것을 이로운 기운과 해로운 기운이라고 해도 좋고, 선과 악이라고 해도 좋고, 신과 데블(devil)이라고 해도 좋고, 네겐트로피와 엔트로피라고 할 수도 있다.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현상 이면에는 그 현상을 일으킨 무형의 힘이 상충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정치, 경제, 자연계적 재난이 확대심화되는 전지구적 몸살을 앓아 왔다는 것이다. 현상의 규모가 전 지구적이라는 것은, 이면에 상충하는 힘의 규모가 최소한 전 지구적인 것 이상임을 의미한다.

  ◇ 인류의 생존의 역사는 조화의 힘과 분열의 힘의 충돌

  사례별로 좀 더 들여다보면 9.11테러와 이라크 전쟁은 누군가 말했듯이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충돌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 현상 이면에는 두 문명을 조화시키려는 무형의 힘과 분열시키려는 무형의 힘이 충돌하고 있다. 97년 동아시아 외환위기는 신진 아시아 경제권과 신자유주의 자본의 충돌이 아니라 그 이면에 두 세력을 조화시키려는 무형의 힘과 분열시키는 힘이 충돌하여 벌어진 결과이다. 2008년 현재의 세계적 자본금융시장 교란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구온난화도 온실기체 증가의 문제로 단순화시킬 수 없는 측면이 많다. 내핵의 활동에서 비롯된 지구 전체적 변화와 그 변화를 막는 힘의 작용에 의해 빚어지는 복잡한 현상의 일부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의 역사, 그리고 지구의 역사는 진화를 통한 생존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진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 존재방식을 달리하는 진화가 불가피하다. 그러나 진화를 하려면 새로운 변화와 기존의 질서를 잘 조화시킬 때만이 가능하고, 그렇지 않으면 재난으로 악화되는 것이다.

  조화시키려는 무형의 힘과 부조화시키려는 무형의 힘 사이에 인간과 지구의 역사는 놓여져 있고, 현재 전 지구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정치군사적 경제적 자연환경적 재난은 그 보이지 않는 이면의 투쟁에서 비롯된 몸살인 것이다. 요컨대 하나의 사건 또는 현상 이면의 비물질적 정신적 무형적 충돌을 볼 수 없으면, 즉 이면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암투를 알지 못하면, 왜 비슷한 사건과 현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심화되는지, 그것이 쌓이고 쌓여 대형화하는 반복이 왜 일어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저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지 경악하고 인재니 천재니 논란을 벌이는 것에 그치는 것이다. 모든 문제 해결의 관건은 물질적 현상 이면의 무형에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세계의 정치군사 문제, 경제사회 문제, 문명종교 문제, 에너지기후 문제, 환경위생 문제는 각기 성격이 다른 별개의 문제가 아니다. 모두가 이 글에서 정의한 ‘현상과 이면’의 문제이며 ‘유형과 무형’의 문제에 해당한다. 모든 사태의 이면에는 하나로 연계된 총체적이고 전지구적인 무형의 충돌이 휩싸고 있다. 서두에서 말했듯 모든 현상에는 반드시 그 이면이 있고, 모든 유형의 이면에는 무형의 힘이 상충한다.

  그 무형의 상충이 현상이라는 결과로 표면화되는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현상과 이면을 뒤섞어서 단일화 또는 단순화하고, 유형과 무형을 분별하지 않고 동일시하는 한, 현상 이면의 거대한 무형의 충돌에 인류가 눈뜨지 않는 한, 단속적으로 반복 심화되는 전지구적 몸살은 결코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을 것이고, 언제까지 지속될지 어느 정도로 악화될지 어떤 형태로 끝이 날지 아무도 단정할 수 없다. 세계가 빅뱅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다. 최소의 희생을 내는 최선의 길이 있고 최대의 희생을 내는 최악의 길이 있으며, 그 중간에 여러 경우의 길이 있다. 여러 갈래 길 중 어느 길로 들어설지 미지수지만 세계는 그중 어느 한 길을 반드시 갈 것이다.*

김우철(신들의 투쟁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