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 조희성님 걸어오신 길 34 >> 밀실의 수도생활

 
하나님이 영모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시다
 

  하나님이 영모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시어 죽음의 길을 선택한 마음을 변화시킴

  그 은광 장로교회에서 개관 기념집회를 마치고 밀실에 들어서자마자 해와 주님께서 “조사장 저 마귀새끼가 ‘좋아하는 음란죄’에 걸려 떨어졌다.”고 청천벽력 같은 고함을 치시는 것이었다. 그 말씀을 들으니 하늘이 노래지고 온 전신에 맥이 풀리며 몸이 천길 만길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좋아하는 것이 죄라면 누가 이 길을 갈 수 있겠습니까? 나는 도저히 더 이상 이 길을 갈 수 없으니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하렵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너무너무 괴롭혀드려 죄송하고 송구스런 마음으로 몸 둘 바를 몰랐는데 이제 또 좋아하는 음란죄에 걸려서 떨어졌으니 저는 이제 포기하겠습니다. 용서하여 주십시요.’하면서 죽을 각오를 하니 그동안 살아온 가시밭 인생길이 생각나면서 슬픔이 북받쳐 올라왔다.

  이사람은 밀실에 들어오면서 ‘이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밀실에 들어와 마지막 연단을 받게 되니 여기서 이긴자가 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게 되면 살아서 나가지 않을 것이다.’ 하고 굳은 결심을 한 바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도 이루어 드리지 못하고 죽을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기가 차는 것이었다. 그 슬픔은 어디에도 표현할 수 없었다.

  이사람은 숙소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울면서 목을 매달 끈을 찾고 있는데 영모님께서 갑자기 나타나셔서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성급하게 왜 그러는 거야?” 하시며 이사람 두 손을 붙들고 우시는 것이었다. 이사람도 같이 흐느껴 울면서 “죄송합니다. 또 하나님을 괴롭혀드렸군요, 이 몸과 생명 전체를 모두 하나님께 맡겼으니 죽는 것도 내 뜻대로 할 수가 없는데 죽으려고 했으니 내가 또 죽을 죄를 지었군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하고 한참을 울다가 죽을 마음을 고쳐서 참고 견뎌보겠다고 결심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영모님은 온 데 간 데 없으시고 방안에 이사람 혼자 있는 것이었다.

  영모님이 문을 열고 나가셨나 하고 문을 보니 문고리는 그냥 걸린 채로 있었다. 하나님께서 다급하니 영모님의 모습으로 오신 것이었다.그리하여 죽으려는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이를 악물고 연단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음란죄’에 걸려 넘어진 것이 3월 하순경이었는데, 그때부터 전도하러 가지도 못하고 나를 짓이기는 연단을 가일층 계속하였다.  

  ◇ 모든 형제를 하나님으로 여기다

  밀실에서는 개간된 농지가 많이 있고 계속 개간을 해나가고 있어 포도 농사와 함께 밭농사도 많이 하였다. 이사람은 가을이 되면 김포공항 가는 방향의, 십정동에 있는 나병 환자촌에 가서 닭똥을 몇 트럭씩 사서 밭 가까운 데 부려놓곤 하였다. 그리고 밤 늦게까지 지게에다 바소쿠리를 차려서 닭똥을 짊어지고 경사진 산 언덕을 넘어 포도밭까지 운반을 하였다.

  그러면 온 몸이 닭똥 냄새와 땀으로 범벅이 되지만 그래도 끝까지 일을 해야 했고, 봄이 되면 포도나무의 순을 치는 등, 밭 손질도 하였다.예수가 자신을 가리켜 ‘포도나무’라 했는데, 포도나무가 뱀이나 구렁이같이 구불구불하게 생긴 것이 예수를 간접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보고 ‘예수가 그 말은 바로 했구나’ 하는 생각도 하였다. 언젠가 비가 많이 와서 마을 방천(防川)이 무너져서 수해가 난 후에 이사람 혼자서 며칠을 걸려 큰 돌을 운반해서 그 둑을 다시 튼튼히 쌓아서 정상으로 만들어 놓고, 도로보수도 하였다.

  땅의 소유권자가 누구인가에 상관없이 희생적으로 일을 하였으므로 하루는 관할 행정공무원이 이사람을 찾아와 인적사항을 묻기에 왜 그러시냐고 하니 표창을 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사람은 표창은 무슨 표창이냐며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 하여 극구 만류하여 인적 사항을 가르쳐 주지 않고 돌려보냈던 적도 있다.

  ◇ 자신을 짓이기는 생활

  이와 같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심한 중노동을 헌신적으로 하는 고로 이사람이 지나가면 그 동네나 이웃 동네에 놀놀고 있는 아이들이 “저기 꽃집의 머슴아저씨 간다.”고 소리 지르기도 하였다. 해와 주님이 계신 집은 꽃이 많이 있는 고로 ‘꽃집’이라고 불렸으며 이사람은 그 집의 머슴으로 소문이 났던 것이다.새벽이나 저녁이나 일을 하였는데 기분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해와 주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일정하게 규모있게 일을 하였다.

  아카시아 나무는 하루에 두 짐씩 하게 되어 있는 고로 오만제단 꼭대기에 있는 아카시아 나무는 대부분 이사람 손으로 져 날랐던 것이다. 처음에는 가시가 날카로워 손을 찌르고 피부가 긁히는데, 먼저 와서 단련된 고참 형제들을 따라 가려니 상처가 더 많이 나고 고통스러웠던 것이다.또한 걸음을 겨우 떼어 놓을 정도로 무겁게 짊어지고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눈이 온 겨울에는 미끄러져서 다치기도 했고, 겨울이 아닌 때도 나무 부리에 걸려 지게를 짊어진 채 나뭇짐과 같이 거꾸로 몇 바퀴 굴러 떨어져 온 몸에 가시가 찔리기도 하였다.

  숙소에 와서 옷을 벗어 보면 등에도 가시가 박혀 있는 그런 상태에서도 ‘너 같은 새끼는 마귀니까 죽어야 돼.’ 하며 고소하게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런 상처가 나고 가시가 박혀 있는 상태에서도 약 한 번 쓰지 않고 지냈어도 곪아서 덧나는 일이 없고 상처가 빨리 치유되는 체험을 수없이 하면서 지냈다. 한 번은 무거운 돌을 운반하는데 젊은 청년이 하는 말이 “우리는 힘이 약하지만 조사장님은 힘이 장사시니 이 돌을 한 번 짊어져 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힘이 있다 해도 40대 후반 장년에게는 불가능할 정도의 무거운 큰 돌인데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사람은 막내로서 고참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의미에서 그 바위를 짊어지고 겨우 일어나니 다리가 벌벌 떨리며 오금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그러나 이를 악물고 한발 한발 옮겨서 가니 중간에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고로 ‘너는 쉴 수가 없어! 너는 이런 고통을 당해야 돼.’ 하면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목적지까지 운반해 가며 나를 짓이겼던 것이다.

  해와 주님께서는 이사람의 별호를 ‘일꾼’이라고도 하시고, ‘12지파 두목’이라고도 하셨다. 다른 형제들은 ‘4’ 숫자지만 조사장만은 ‘5’숫자라고도 하시고, “조사장만 이루어지면 너희들은 맡아 놓고 구원이야!” 하는 말씀도 하시고, ‘막내둥이’라고도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