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주 조희성님 걸어오신 길 33 >> 밀실의 수도생활

 
하나님이 되어가는 영의 싸움
 

  그래서 밀실 식구들이 해와 이긴자를 따라 통곡을 하고 울었던 것이다. 그때 이사람도 두 다리를 땅바닥에다 뻗고 대성통곡을 하며 울면서 ‘또 하나님을 괴롭혔으니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세요.’하고 통회의 눈물을 흘리며 해와 주님의 쓴 매를 다 맞았다.

  그러면서 마음 속으로는 ‘이 개 같은 마귀새끼 더 때려 주세요, 죽여주세요.’ 하며 고소하게 여기고, 이를 갈고 치를 떨며 다시는 ‘기다리는 음란죄’에 걸리지 않으리라고 굳은 결심을 하였다. 이처럼 넘어지면 오뚝이와 같이 다시 일어나서 새 출발을 하여 도전하고 또 도전을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

   ◆ 일초일초 목숨을 건 사투를 벌여

  하루는 산에 가서 아카시아 나무를 베고 있는데, 저쪽에서 지나가는 어떤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사람이 과거에 논산 훈련소 교관으로 있으면서 금마 재건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을 때, 학생이었던 최군과 똑같이 생겼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것이 ‘뒤돌아보는 음란죄’에 걸린 것이었다. 이것을 아시고 해와 주님께서 산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큰 소리로 “조사장!” 하며 이사람을 찾는 것이었다.

  이사람은 순간 ‘이크, 또 걸렸구나!’는 생각과 함께 하던 나무는 두고 부리나케 해와 주님께로 달려갔다. 해와 주님께서는 “조사장 저 새끼, 떨어졌다.”고 펄펄 뛰시며 그 큰 손으로 닥치는 대로 후려치시고 우산대의 뾰족한 끝으로 있는 힘을 다하여 쿡쿡 찔러대며 야단을 치셨다. 그러나 이사람은 감사한 마음으로 매를 맞았다.

  기운이 없어 매를 맞는 것도 아니고, 또 때릴 때 팔을 들어 제지를 하던지, 몸을 약간 피하면 매를 맞지 않을 수 있었으나 ‘나’라는 것이 어느 정도 죽은 고로 여자 분에게 그런 뭇매를 맞고도 오히려 고소하게 여겼다.이렇게 되니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고 겁이 났으며, 다시는 과거를 생각하지 않을 것을 굳게 다짐하게 되었다.

  이 ‘뒤돌아보는 음란죄’에 걸리지 않으려면 쉴 틈을 주면 안 된다 하여 밭에 가서 일을 하든지, 산을 개간하였던 것이다. 일을 하다가 힘이 들어서 ‘좀 쉬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면 ‘이 개 같은 마귀 새끼가 쉬기는 뭘 쉬어! 마귀새끼. 너는 죽어야 되는데 쉬면 마귀가 도로 살아나니까 쉴 수 없어’하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하여 일을 하였던 것이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면 결국에는 입에서 단내가 나면서 정신이 들락날락하다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버리기 일쑤였던 것이다. 몇 시간 뒤에 깨어나 보면 쓰러져 있는 고로 ‘이 개 같은 마귀새끼가 쓰러졌구나!’ 하고 다시 일어나서 해머를 들고 돌을 깨며 개간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러면 또 정신이 들락날락하며 더 이상 참고 견딜래야 견딜 수 없는 경지에까지 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거기서도 포기하지 않고 고도로 1초도 놓치지 않고 영모님을 바라보면서 계속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게 또 쓰러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참 후 다시 깨어나서는 죽도록 일을 하는 피투성이의 처절한 마음의 싸움을 계속했던 것이다. 그러니 1초 후에 어떻게 된다는 것은 전혀 예측할 수가 없었다. 오직 내 생명이 되신 하나님, 영모님만을 바라보며 밀실 안에서 이 찬송가를 즐겨 불렀던 것이다.  

♫♪ 내일 일은 난 몰라요 하루 하루 살아요 불행이나 요행함도 내 뜻대로 못 해요
험한 이 길 가도 가도 끝은 없고 곤해요 우리 주님 팔내미사 내 손 잡아 주옵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어머니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
  
좁은 이 길 진리의 길 주님오신 그 옛 길  힘이 들고 어려워도 맡기면서 옵니다
주님이여 그 음성을 항상 들려 주옵소서  내 마음은 정했어요 변치말게 하옵소서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어머니여 날 붙드사 주신 소명 이루소서
♫♪

  이 찬송은 작사, 작곡한 사람이 평양 신양리 형무소에서 공산당으로부터 사형언도를 받고 집행하는 날짜만 기다리며 전체를 하나님께 맡긴 상태에서 불렀던 곡이었는데 이사람의 처지를 그대로 표현한 찬송이기도 했다.밀실에서 이기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면, 절대로 살아서는 세상에 나갈 수 없으니 목숨을 끊어버려 끝장을 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이긴자가 되든지 둘 중에 하나였던 것이다.

  그렇게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짓이기게 되니 밀실 안에서 계속해서 소변으로 피가 쏟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처음에 밀실에 입고 들어간 옷은 헐거워 입지 못하게 되었다. 한동안 짓이기는 생활을 하게 되니, 몸은 가죽과 뼈만 남아서 얼굴도 핼쑥한 상태로 되어 옛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때 이사람을 처음 보는 사람은 환자로 보았겠지만 구면인 자는 이사람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자유율법을 범하지 않겠다고 각오를 하고 매달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1980년 2월 초에 “이긴자가 되었다” 하여 해와 주님께서 새옷도 해 주시고 신발도 사 주시면서 전도를 나가라고 하셨다. 그 후 이사람은 걸어서 집집마다 전도를 하며 멀리 포리까지 매일 전도를 다녔다.

  ◆ 좋아하는 것이 음란죄

  하루는 은행리에 있는 은광 장로교회의 주임장로인 유장로를 전도하였다. 유장로는 전도 받은 지 3일 만에 은혜를 받아 소변으로 피를 쏟은 것을 보여주며,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니 하나님의 은혜가 분명하다며 몹시 기뻐하였다. 그리고 이사람이 목사인 줄 알고 이 교회를 조목사님께 드리겠으니 내일부터 단에 서서 예배로 인도하시고 마음대로 쓰시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사람이 장로교회 간판을 떼어버리고 전도관 간판으로 바꿔 달라고 하였더니 유장로와 그의 아들이 함께 그 자리에서 장로교 간판을 도끼로 쪼개버리는 것이었다.전도관 간판으로 바꿔 달고 개관 예배를 보게 되었을 때 당시 기성교회 측 한국 복음 전도회 회장이었던 신영균 목사를 주축으로 차재복 장로 등이 이사람을 만나 전도를 받았다.

  예배를 다 보고 나서 그들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놀랍고도 새로운 진리의 말씀이라고 감탄하였다. 이렇게 이사람 말을 듣고 기성교회 하나가 송두리째 간판을 바꿔 달고 넘어오게 되었다.그것을 보고 차재복 장로 등은 여의도 광장같이 넓은 데서 대규모 부흥집회를 갖게 되면 머지않아 이 세상이 전도관 천지가 되겠다며 좋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