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 5000명을 통솔할 책임자로 선출되었다

  도착한 곳이 어딘지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포로를 실은 상륙함이 닻을 내리며 정박하는 것을 보아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날씨가 너무 추워 작은 배로 옮겨 타는 구름다리 바닥이 얼어붙어 몹시 미끄러웠다. 내 바로 앞에 내리는 사람이 미끄러져 바다로 빠졌으나 그들은 구조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참으로 포로들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었다.

  큰 배 밑에 떨어지면 배 밑에서 끌어당기는 힘이 있어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수영을 잘하는 자도 살아 나오기 어렵다. 조심조심하여 구름다리를 건너서 작은 배로, 작은 배에서 육지에 도착해 보니 거기가 바로 경상남도 거제군 일운면 고현리의 거제도 포로수용소였다. 거제도는 우리 나라에서 제주도 다음 두 번째로 큰 섬이며, 부산, 진해, 마산, 충무와 인접하고 있다.

  1970년경에 육지인 통영군과 육교를 건설하였고, 면적은 389㎢이다. 6.25 당시에는 상주 인구가 약 10만을 헤아렸으나, 근래는 삼성과 대우 두 조선소가 생겨, 인구가 많이 늘어난 지역인데, 유엔군이 포로수용소를 3년간 운영하였기 때문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그곳에서 이사람은 포로 아닌 포로로서 연단과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3년을 지내게 되었다.

  이사람은 거제도 포로수용서에서 인간으로서는 최하위의 밑바닥 생활을 했다. 잠을 잘 때는 논바닥 위에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한 사람이 누우면 그 다음 사람은 발쪽에 머리를 두고 눕고, 또 바로 누우면 그 다음은 거꾸로 눕고 하여, 수백 명이 전부 옆구리가 가마니에 닿게 모로 누워 잤다. 그리고 그 위에 담요를 한 장씩 덮고 잠을 자는데 몇 분만 지나면 체온에 의하여 가마니에 붙어있던 얼음이 녹아 가마니가 축축하게 젖어 옷이 젖고 몸이 젖을 뿐만 아니라 옆에 누운 사람들의 발냄새가 코를 찔러오는 것이었다.

  그러한 악취와 추위 속에서도 군소리조차하지 못하고 잠을 자야하는, 그야말로 인간으로서는 밑바닥 중의 맨 밑바닥 생활을 했던 것이다.이사람이 소속된 수용소는 61포로수용소였다. 1개 수용소 포로 인원은 통상 5천 명이었다.

  각 포로수용소에서는 포로 중에서 포로 5천 명을 통솔할 책임자를 뽑았는데, 이사람이 소속된 61포로수용소에서도 통솔책임자를 뽑기 위하여 전체 포로 중 후보자 50명을 뽑는 중에 이사람이 뽑혔고, 다음 10명을 뽑는 데도 이사람이 뽑혔으며, 나중엔 5명을, 다음은 2명을, 그리고 마지막 한 명에 바로 이사람이 뽑히게 되었다.

  5천 명을 울렸다 웃겼다 하며 손아귀에 쥐고 휘두르는 통솔책임자를 어떤 개인이 지명함도 아니요, 5천 명의 의사를 종합하여 투표와 거수 등으로 나이 스무살의 이사람을 뽑았던 것이었다. 그 속에는 대학교수, 목사 등 사회에서 활약하던 지도급 인사들도 있었다. 3년 동안 61포로수용소를 좌지우지하는 동안 다른 수용소는 책임자가 몇 개월만에 바뀌었다.

  그러나 이사람이 맡은 61포로수용소만은 책임자가 3년 동안 바뀌지 않았다.61포로수용소 안에는 극좌익계에 물들은 사람들이 많아 어느 수용소보다 우익계 청년들이 학살을 당하고 보복을 받으며 가장 곤욕을 치룬 수용소였다. 수시로 빨갱이들이 난동을 일으켜 우익계 청년들을 숙청시켜 주도권을 잡고, 태극기를 내리고 빨갱이 깃발을 올렸다.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과 같이 죽이는 처참한 사태가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

  이사람도 빨갱이들의 표적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어떤 때는 이사람을 모포로 뒤집어 씌워놓고 수십 명이 닥치는 대로 때리며 발로 밟아 짓이기기도 했다. 그런데도 갈비뼈 하나 상하지 않았으니, 하나님께서 이사람을 항상 지켜주셨던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골병이 들어서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수용소 내에서 폭동이 일어났을 때에도 미군들이 기관총을 연발로 난사하여 수많은 포로들이 총에 맞아 쓰러져 죽는 가운데에서도, 이사람의 앞사람, 옆사람, 뒷사람이 기관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는 데도 이사람만은 총에 맞지 않고 상한 데가 없는 것을 보고, 참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는 것을 확실히 알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중에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와서 “조동지!, 조동지!” 하고 깨우는 소리에 일어나니 잠깐 천막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잠시 후 조동지를 죽이기로 되어 있으니, 지금 속히 몸을 피하시오!” 하고 이사람을 깨운 사람이 이북 말씨로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더니 “그건 알 필요 없다.

  다만 내가 죽을 상황에 처하였을 때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났으므로 당신은 나의 생명의 은인인데 당신이 죽게 되었으니, 그 은혜를 갚는 의미에서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니 생각을 고쳐 먹고 인민공화국으로 돌아오시오.”라고 하며,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우익 청년들을 제거해 버리려는 계획속에 대동군 초대 치안대장을 지낸 바 있는 이사람이 제 1차로 숙청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옆의 천막으로 피해 누워있으니, 잠시 후 큰 돌을 가지고 사람 머리를 찧어 죽이는 소리가 나는 것이었다. 이사람 바로 옆에 누워 있던 사람이 이사람 대신 억울하게 희생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후부터는 이사람은 얼굴에다 검정칠을 하고 길게 내려쓰는 영국군 모자를 눌러쓰고 숨어서 다녔다.

  식당에서 밥을 먹기 위하여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으면 노출이 될까봐 밥을 타러 가지도 못하고, 김포 고향친구가 타온 밥을 둘이서 나눠먹곤 하였다. 친구가 타온 밥을 얻어 먹는 것도 한 두 끼지 때로는 미안한 생각이 들어 계속 먹지 못하고 굶기도 하며 지냈는데 그만 일주일 만에 빨갱이 골수분자들에게 다시 들키고 말았다.

  빨갱이들은 우익 청년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버리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대동군 초대 치안대장을 지낸 바 있는 이사람이 제 1차로 숙청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좌익청년들에게 잡혀서 빨갱이 본부로 끌려가는데, 그들은 빨갱이 대장에게 “조희성이가 죽은 줄 알았는데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 있어 잡아왔습니다.” 하고 보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