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함경남도 홍원군 보현면 방동리에서 부친 손윤모, 모친 이최섭의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제 나이 20살에 6·25 전쟁이 터져 온 천지에 빨갱이들이 설쳐대더니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말미암아 그 많던 빨갱이들이 온데간데없게 되었고 또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다시 1·4후퇴를 하게 되었을 무렵입니다.그 당시 저의 집은 할아버지 때부터 물려받은 커다란 기와집과 밭, 방앗간이 있었으나 아버지께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풀어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좋은 일을 많이 하였답니다.

  그런데 군대에 나가있던 오빠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앞으로의 생사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올케에게 면회를 오라는 내용이었습니다.그런데 올케는 여호부두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입장이었는데 3살 된 자식을 데리고 가려니 어쩔 수없이 제가 동행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카를 제가 업고 올케는 장사보따리를 짊어지고 100리 길을 걸어가게 되었답니다.여호부두에 도착하였는데 올케가 하는 말이 오늘 자고 내일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올케는 애기와 함께 오빠에게 면회를 가기 위해서 북으로 이동하였고 그 동안 저는 길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나무 밑에 그냥 앉아 있었는데 해가 저물어지기 시작하니 국군들이 왔습니다.그리고 하는 말이 “여기 있으면 죽습니다. 빨리 여호부두에 나가서 배를 타세요. 여기는 곧 전쟁터가 됩니다. 부두에 배를 많이 준비해 놓았으니 빨리 나가서 배를 타세요.” 이렇게 다급하게 말을 하였습니다.

  들리는 말인즉, 어떤 섬에 약 두어 달 정도 있다가 전쟁이 끝나면 다시 이 여호부두로 데려온다는 것이었습니다.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고 마지막 배가 한 척 남아 있었는데 저 배만 떠나면 이제 배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마침 3살배기 아기를 데리고 있는 어떤 아줌마가 저를 보더니 “애기씨, 애기씨는 어디서 왔어요?”(이북에서는 시집을 안간 처녀를 애기씨라고 부름)

  이렇게 물어보기에 “홍원군 보현면 방동리 429번지에서 왔수다.”라고 말하였습니다.“그럼, 거기서 개울만 건너면 우리 친정인데 우리 함께 갖다 옵시다.”라고 말을 하여 배를 같이 타게 되었습니다. 어떤 섬에 간다고 하여 탔는데 내려 보니 경상남도 하천이라는 섬이었고 물론 어디인지도 몰랐지만 그리고 보따리를 짊어지고 걸으라고 하여 또 걸으니 지천도에 도착하였습니다.

  방학을 맞은 학교가 있었는데 이동하여 온 사람들이 모두 거기에서 쉬게 되었습니다.다른 사람들은 이불도 있고 여러 가지 짐들이 있었지만 저는 이북에서 나올 때 입은 옷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같이 온 아줌마가 자기도 혼자니 같이 자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하여 같이 자게 되었습니다.하룻밤을 자고 나니 배급쌀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쌀을 받아 밥을 짓고 있으니 어떤 아저씨가 하는 말이 “이 애는 누구하고 왔노?” 하기에 옆의 아줌마가 “우리하고 같이 왔슴메.” 이렇게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그 아저씨가 “그럼, 우리 애하고 같이 있다가 내년에 집에 같이 가면 되겠네.” 이렇게 말하니 “야, 그렇게 해라. 배급쌀을 받아먹고 그늘나무 밑에 가만히 앉아 놀아봐야 뭐 하겠니. 우리 같이 가자.”고 아줌마가 권유하였습니다.저도 마음이 내키어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위에서 말한 애와 함께 피난이야기를 자주 하였는데 하루는 모기장을 치고 잠을 자고 있으니 어떤 사람이 모기장을 들추어내기에 우리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을 쳤습니다.

  옆에 있던 애는 앞마당 쪽으로 도망을 쳤지만 저는 그러지도 못하고 뒤쪽에 있는 장독 뒤로 숨어서 꼼짝달싹도 못하고 새벽녘까지 숨어있었답니다.날이 밝아오니 용기를 내어 옆의 피난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는데 어떤 아줌마가 하는 말이 저 옆에 가면 어떤 신부님이 계시는데 급히 온 사람들을 받아준다고 하니 가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물어서 찾아가보니 미국인 신부님이 계시고 안쪽에 회장님이라는 분이 계셔서 그분에게 사정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회장님이 하는 말이 오늘은 집에 가서 자고 내일 다시 오면 신부님의 사인을 받아서 야전병원에 넣어주겠다고 그랬습니다.그리하여 다시 친구네 집에 갔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어디 갔다가 이제야 오는 거니? 우리는 미군부대에 빨래하러 다니는데. 맨 마지막 배에 타고 제일 끝에 있는 부대에 갔다가 왔는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주며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서 하룻밤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 다시 거기로 갔습니다. 저 말고 다른 처녀들도 몇 명 왔는데 모두 부모가 있어서 그런지 깨끗한 모습으로 왔지만 저는 입은 옷 한 벌 밖에 없었는데다가 빗질도 하지 못하고 그냥 초췌한 모습으로 갔었습니다.회장되는 사람이 미국인 신부에게 사인을 받더니 저를 포함한 처녀들을 야전병원으로 이끌고 갔습니다. 야전병원이란 그 당시 거제도 포로수용소 옆에 설치된 미군들의 야전병원이었던 것입니다.

  거기에서 저희들이 하는 일이란 미군들이 먹고 난 식기를 씻고 나르고 청소하는 일이었는데 저희들 말고도 많은 여자, 남자 학도병들이 일을 하면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습니다.하루는 포로 한 명이 철조망을 넘어 개울에 빠졌는데 병원에 실려가 죽지는 않았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러한 이야기를 그냥 흘려버렸지만 승리제단에 와서야 그 포로가 바로 우리 주님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물론 우리 주님께서는 철조망에서 떨어진 후 바로 미군 앰뷸런스에 실려 야전병원으로 후송되셨고 거기서 김아열 선교사를 극적으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선교사의 협조로 200여 명의 우익청년을 대동하고 미군의 지원을 받아 좌익 빨갱이 골수분자들을 색출, 별도로 수용하고 반공주의 일색으로 만들어버리는 혁명작업을 개시하였던 것입니다.저는 주님께서 거제도 포로수용서에서의 활동을 이처럼 옆에서 간접적으로 들어 알 수 있었고 제가 알고 있는 이 사실이 이 역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려는 심정으로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계속)*

구술정리 이승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