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에 눈을 뜨고 자라나면서 이 세상의 작고 큰 숱한 가치들을 접하게 된다. 참으로 우리 앞에는 길도 많고 갈래도 많고, 그리하여 수천 수만 가지로 쪼개어진 분업의 현장 속에서 눈알이 핑핑 돌 정도로 추구할 것도 많고 목표도 많다.

   대통령 장군으로 시작되었던 꼬마시절 우리들의 호탕했던 포부와 목표는 점차 자라나면서 현실 속에서 작아지고 움추려든다. 그리하여 어떤 이는 오직 세끼 밥 먹고 돈 모으는 일이 최상의 목표요, 또 어떤 이는 학문하는 것, 혹자는 정치 사업 종교 기타 수천 수만 가지로 각기 가치 기준이 다르고 그 추구의 대상이 다르다.

  일생을 연구실에 틀어박혀 구더기 한마리를 들여다 보며 연구하느라 머리가 희어지는 이들도 있고, 한탕 크게 쳐서 잘 살아 보려다가 일생을 큰집(형무소) 들락거리다 허리가 꼬부라지는 자들도 있다.그야말로 인생은 희비의 쌍곡선이다.

  이렇게 쪼개지고 갈라진 숱한 전공분야 한 곳에만도 우리의 노력은 수십년의 세월이 요구된다. 그리하여 드디어 그 분야에서 조금 소용될 정도가 되고 두각을 나타낼 때가 되면 이미 머리는 백발이 되고 몸은 노쇠하여 죽음의 문턱에 서게 되는 것이다.

  오호! 통재라! 예로부터 그 누가 이 죽음을 피할 수 있었던가! 아 - 무 - 도 - 없었다. 인간은 초초로 죽음을 향해서 다가가는 존재일 뿐. 우리가 마음 속에 어떤 가치를 세우고 그 무엇을 향해 일생을 전력투구했다 한들 그 모든 것 뒤에 필연코 죽어야만 한다면 - 무엇이랴! 나의 이 노력과 애씀은. 헛되고 헛될 뿐이다.

  잠시만 생각해 보라. 살아있음. 현재 내 생명이 숨쉬고 있음.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최상의 가치 - 신인합일(神人合一)의 경지란 더 이상 주고 받을 것도 없으며, 무심(無心)까지도 모두 뛰어넘어버린, 내 본래의 현존(現存)만이 영원히 빛나는 상태, 여기 존재하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는 내 본래의 자리요 세계인 것이다.

  혹, 아직도 최상의 가치를 두고 아래 아래 저 아래에 있는 부분 가치에 매달려 있는 이들이 있다면? 그의 이름은 바보가 아닐까.*......................<유리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