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대구 MBC 방송국에서는 ‘부자' 라는 주제로 2부작에 걸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제 1부에서는 4백년 간이나 만석꾼을 유지해온 경주 최씨 집안의 비결을 소개했으며, 제 2부에서는 재산의 ‘기부'가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장수와의 연관성 및 부의 축적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국내 최초로 다양한 실험을 통해 검증했다. 이번 호에서는 제 1부를, 다음 호에서 제 2부를 소개한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메디치가(Medici family)는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해 전쟁을 하게 되면 적군을 사버릴 만큼 막강한 부를 과시하면서 2백년간 중세 유럽을 지배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메디치가 보다 더 오랜 기간인 4백년 동안이나 부를 유지한 가문이 있으니 그들이 바로 경주 ‘최부자'다. 부자 3대 못 간다는 말이 있지만 경주 최부자는 조선시대 무려 12대 동안이나 부자 가문을 유지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이같은 부의 유지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경주 최씨 가문에는 노비와 소작인을 천시하지 않고 인격적으로 대하는 전통 외에 대대로 내려오는 몇 가지 가훈이 있는데 이는 후손들 사이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 되었다.

그 가훈 중 첫째는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선조가 누명을 쓰고 유배되는 것을 보고 그 직계후손이 만든 것으로 양반을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벼슬만 하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정경분리 즉 이것은 정권이 교체되는 것과 무관하게 오랫동안 부를 유지할 수 있는 큰 비결이 되었다.  

둘째는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말라' 이다. 따라서 만석이 넘을 경우는 재산을 일부러 늘리지 않기 위해서 소작료를 낮추었는데 이것이 오히려 소작인들 사이에서 주인에 대한 존경심을 불러 일으켜 최부잣집의 땅을 더 많이 갖기를 원하는 현상을 유발하기도 했다.

셋째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이다. 1691년 삼남지방에 극심한 가뭄이 들자 최부자는 수백석의 곡식으로 대대적인 구호활동을 펼쳤는데 거의 매년 소작료 가운데 천석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썼다. 게다가 집 뒤에는 항시 뒤주를 두고 그 속에 쌀을 채워 넣어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지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넷째는 ‘흉년에 땅 사지 말라'이며 다섯째는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였는데 마찬가지로 천석 정도가 손님 접대에 사용되었다. 통신수단이 미비했던 시절, 과객은 전국의 중요한 정보제공처가 되었다. 여섯째는 ‘며느리는 시집온 후 3년간 무명 옷을 입어라'이다. 기록에도 남아 있듯이 풍요로웠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사치하지 않은 최씨 집안의 가풍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하지만 1890년대 전국적으로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최부잣집도 위기를 맞게 되었는데, 자칭 활빈당이라 칭한 무리들이 양반들의 집을 태우고 돈을 강탈하던 중 최부자집에도 들러 처마에 불을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최만희는 침착하게 두목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죄가 있다거나 잘못이 있으면 사람에게 있는 것이지 애꿎은 집은 왜 불태우느냐?" 그러자 활빈당의 두목은 “양반과 부자치고 도둑 아닌 자가 어디있소?"로 화답하였고 이에 최만희는 “최씨집이 그동안 어떻게 처신했는지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최씨 가문의 선업을 확인한 80여명의 불청객들은 순순히 물러갔으며 최씨 집안은 여러 대에 걸쳐 이웃에 베풀어 온 적선 덕분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많던 경주 최부잣집의 재산은 모두 어디로 간 것일까? 광복 이후 토지개혁으로 만석꾼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었던 시대적 변혁기를 살았던 경주 최부잣집의 마지막 부자, 최준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삶에 ‘富의 반전'이라는 극적인 요소를 추가시켰다.

즉, 후손에게는 단 한 푼도 남기지 않고 자신의 전 재산을 교육사업과 민족의 독립을 위해 전액 투자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백범 김구선생이 어느 연설에서 최준 선생을 일컬어 말한 것이 영상자료로 소개되었다. “가산을 탕진하면서까지 독립 자금을 보내주신 것에 대해 3천만 동포가 우러러 볼 것입니다."*   강민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