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안양교도소에서 1차 옥고를 치르시던 때의 일이다. 추운 겨울 어느 날, 새벽 3시에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한 지인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잠을 깨워서 정말 미안한데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었어."

내용인즉 원래 면회가기로 되어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면회 대기중인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를 했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나한테까지 전화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나니 갑자기 기분이 묘해졌다. 생전 처음 주님 면회라서 설레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뭐랄까, 이상할 정도로 차분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설렘과 차분함을 동시에 안은 채, 몇 시간 뒤 나는 꿈에 그리던 주님을 뵐 수 있었다.

그런데 철창 너머로 주님 모습이 비춰오자 갑자기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몸 속에서 홍수가 났는지 눈물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나를 찬찬히 보시면서도 함께 간 두 사람에게 제단에 관련된 일에 대해서 말씀하시느라 특별한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이렇게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바라보고만 있은 지 20분 정도 지났을까? 문득 내 눈이 주님의 눈에서 주님의 손으로 아주 잠깐 옮겨갔고 이내 주님께서 손가락을 아주 미세하게 움직이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쥐고 계신 것 같았다.

그러나 불과 1초도 안되어 다시 시선을 주님의 눈으로 옮겼음에도 불구하고 20여분 동안 백지 상태였던 내 머릿속에 한 생각이 나도 모르게 스쳐지나갔다. ‘지금 주님께서는 손에 무언가를 쥐고 계신 듯 한데 뭘까?' 바로 그 순간이었다. 1초 전의 마음 속의 상념을 숨기듯 나는 주님의 눈만 바라보고 있었고 주님의 얼굴은 함께 간 두 사람을 향하고 있었음에도, 주님의 손은 나를 향해 무언가를 서서히 끄집어 올리기 시작했다. ‘내가 뭘 쥐고 있냐면 바로 이거야' 하시는 듯 돌돌 말린 휴지가 주먹쥔 주님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마치 기둥처럼 삐져나와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시선 이동은 눈 깜빡하는 정도에 불과했기에 누구도 알아챌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설령 알아챘더라도 그 짧은 순간에 지나간 생각을 누가 알 수나 있었을까. 같이 간 그 두 사람은 내가 그런 생각한 것도 주님께서 그런 나의 사소한 마음의 질문까지 화답해 주셨음도 알 턱이 없었다.

휴지 기둥을 보고 또 생각이 멈춰버린 나는 면회시간이 다 되어 주님께서 일어서 나가시자 겨우 제 정신이 들었다. ‘어, 주님 가시네. 제대로 인사도 못드린 것 같은데 다시 한번만 봐 주세요.' 맘 속으로 또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 주님께서 문턱을 넘으셨다가 다시 들어오시더니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시는 게 아닌가.

연이은 마음의 화답에 너무 황송하고 감사하여 그만 또 말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너무 감사한 분에게는 ‘감사합니다'란 말 한마디 하는 것조차도 참으로 어렵구나 하는 사실을 이 날 난생 처음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야 할 수 있었던, 그것도 차마 입밖에 내지 못하고 마음 속으로만 수십번 되뇌인 ‘감사합니다'란 말도 역시 들으셨으리라.

이제 나는 더욱 더 열심히 살아가고 또 살아갈 것이다. 주님께서 주신 ‘세 번째 화답'과 함께 영원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