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종교> 모임, 기존이념 능가하는 가치체계 등장해야 발전 가능해

사람들이 모이고 있다. 종로에서도 모이고 종각에서도 모이고 장충체육관에서도 모인다. 쉼터를 찾아 가벼운 마음으로 공원이나 운동장, 광장 같은 곳에 모이기도 하지만 진지하게 논의하기 위하여 교회와 절과 회관과 같은 곳에 모이기도 한다. <착한 사람들의 모임>, <자랑스런 아버지들의 모임>, <만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과 같이 작지만 소중한 목적을 가진 모임도 있고 사회개혁을 이루려는 거창한 목적을 가진 지도자들의 모임도 있다.

모이는 사람들 중에는 목적에 충실한 사람들도 있지만 단순히 대화를 하거나 분위기 자체에 심취하기 위해 모이는 사람들도 상당수 있다. 이들의 경우 ‘갑갑한 방구석에 쳐박혀 있어봤자 무슨 뾰족한 수가 있나, 마음을 터놓고 누군가와 대화라도 하면 훨씬 즐거워지는 것을…’ 이라는 소박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우연히 <화합과 상생모임>이라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모임의 제목부터가 재미가 있었다. 보통의 경우 <화합>이니 <상생>이니 하는 개념은 모임의 목적이 된다기보다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기류인데 그 자체를 목적으로  내 건 것이 이채로웠다. 모인 사람들의 면모를 살펴보니 대체로 단체의 장들이었고 그중에는 자신이 회장이고 부인이 부회장이고 회원은 한사람도 없는 그런 유명무실한 단체도 있었다. 그렇지만 이를 탓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무엇을 어떻게 하여 화합과 상생을 하는지 보려고 벼르고(?) 있는데 모대학 교수라고 소개받은 사회자가 나와서 ‘제가 먼저 3분 스피치를 하겠습니다’로 시작하였다. 그는 ‘오늘의 모임에는 특별한 목적이 없으며 단지 대화를 위한 것이므로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별하지 말고 저마다 3분씩 발표를 합시다’라고 제의를 하였다.  다들 할 말이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인지 갑작스런 제의-적어도 내게는 갑작스러웠다-에 당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렇게 전개된 그날의 모임은 참 유익했고 유쾌하여 화합과 상생이 이루어졌다!

‘모이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이승만 대통령의 유명한 말도 있지만 모이는 모습은 아름답고 모여서 대화를 하면 실제로 가슴이 탁 트이고 후련해진다.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종내에는 하나님이 되게 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선 자신부터 남김없이 드러내고 대화에 임해야 하는 것이다.

수천 년 간 반목과 투쟁의 표상이었던 종교인들도 근년에 와서 적극 대화에 나서면서 <초종교>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자주 모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한국의 각 종단 지도자들이 거의 다 참가하는 대규모의 모임도 몇 개가 있다. 아직 평신도들 사이에서 상대종교를 사이비, 이단시 하는 태도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지도자급에서는 종교간의 갈등을 거의 버린 것 같다. 그들은 강단을 바꾸어 설교(설법)를 하고 초종교 포럼도 함께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비록 종교인들이 초종교적으로 화목을 이루어가고 있다 해도 크게 아쉬운 점이 있으니 그것은 서로 다른 교리, 서로 다른 구원관을 지닌 종교인들이 진정으로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지구에서 공산국가가 사라진 것은 민주주의라는 보다 우월한 사상체계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처럼 <초종교>도 각 종교의 체계를 능가하는 새로운 종교이념과 가치체계가 등장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또한 각각의 종교인들이 자신의 불완전한 종교를 과감히 버리는 용단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끝날에 모이기를 힘써라’는 기록이 성경에 있고 ‘끝날에는 풀잎사귀에도 신이 깃든다’는 기록이 대순전경에 있다. 열심히 모이고 그 속에서 상대를 이해하고 자신을 죽여서 이기는 자는 ‘선한 사람은 더욱 선해지고 악한 사람은 더욱 악해지는’ 신들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서 천국을 누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될 것이다다.* 이근숙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