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美 트랜스휴머니스트 - 미래인간, 포스트 휴먼은 영생체

지난해 가을, 미국의 격월간 국제정치 전문지 <포린 폴리시(Foreign Policy)>는 세계의 지성으로 손꼽히는 8명에게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사상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사회주의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를 선언한 저서 <역사의 종언>을 쓴 석학,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국 존스홉킨스대 교수의 대답은 바로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이었다.

세계 트랜스휴머니스트협회(WTA) 홈페이지(www.transhumanism.org)에 따르면 트랜스휴머니즘은 현재 인간의 모습이 발달의 끝이 아니라 오히려 초기 단계에 해당한다는 전제 아래 과학 기술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이다.

그렇다면 트랜스휴머니즘이 휴머니즘과 다른 것은 무엇일까? 트랜스휴머니스트인 철학자 닉 보스트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인본주의)의 확장이며 인간과 이성을 중시하는 휴머니즘을 추구하지만, 과학 기술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계발한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에 따르면 인류는 트랜스휴먼을 거쳐 궁극적으로 포스트휴먼(posthuman)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포스트휴먼은 지금의 천재들보다 훨씬 높은 지능인 슈퍼인텔리전스를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병에 걸리거나 늙지도 않으며 항상 활력이 넘치고 피곤함이나 짜증도 느끼지 않는, 이른바 ‘영생’의 꿈을 실현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인류는 과연 트랜스휴먼을 거쳐 포스트휴먼이 될 수 있을까?

사실 현대의 첨단과학자들은 대부분 트랜스휴머니스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숫자가 많다. 얼마전 BBC 인터넷판을 통해 25년 후면 인간이 1000살을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캠브리지대 오브리 드 그레이 교수도 그러하고, 쿠르츠바일 테크놀러지의 대표 레이 쿠르츠바일 등 상당수의 과학자들이 스스로를 트랜스휴머니스트라고 부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지 불과 십수년밖에 되지 않은 트랜스휴머니즘이 이처럼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과학 기술에 기반한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2001년 인간 게놈 지도 완성 이후, 이 결과를 바탕으로 한 유전자 치료를 통해 인간의 지능이나 성격, 육체적 특징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원자나 분자 등 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급의 극미의 세계에서 물질을 합성 조립 제어하는 나노기술도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신뢰를 보내는 분야이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탄소로 이뤄져 있지만 원자의 배열이 다르다. 이같은 속성 때문에 흑연은 인공 다이아몬드의 원료로 사용된다. 이 이론에 따라 나노기술로 원자의 배열을 바꾸면 어떤 물질이든 만들 수 있다는 게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의 생각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마인드 업 또는 다운로딩이라고 부르는 과정이다. 인간의 뇌에 저장된 기억들을 컴퓨터로 옮겨 놓는 것을 말한다. 만일 이것이 가능해지면 사람이 사고로 기억을 상실해버렸을 때 뇌를 다시 ‘부팅’할 수 있다. 또 인간의 모든 기억과 지식을 ‘백업’해 놓았다가 언제든지 새롭게 재생된 육체에 넣어주면 영원한 삶도 가능하다.

최근 영국 브리티시 텔레콤(BT)의 이언 피터슨 팀장은 ‘2050년경에는 고도로 발달한 슈퍼 컴퓨터에 인간 뇌에 저장된 기억들을 다운로드시켰다가 새로운 육체에 옮김으로써 죽음이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이미 현대의 과학은 뇌 속에 칩을 심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작동하는 수준까지 발달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로 지난 4월 BBC 인터넷판은 사고로 목 아래 전신이 마비된 미국인 매튜 네이글 씨가 뇌에 심은 전극을 통해 전자 기기를 움직이고 인공 팔과 로봇을 조작하며 살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이렇게 21세기를 흔들고 있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는 냉동인간이 되려면 현재 우리나라 돈으로 2-3억원 안팎의 돈이 소요되며 고도의 지능인 ‘슈퍼인텔리전스’ 또한 권력과 부를 지닌 사람만이 가질 수 있을 것이므로 이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고 대물림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이상욱 한양대 철학과 교수는 트랜스휴머니즘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개념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몸 속에 온갖 장치를 집어넣고 뇌마저 컴퓨터로 돌아가는 존재를 과연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존재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그들의 의도대로 진행되기가 힘들 것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의 특성이 유전자와 1:1로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들간의 상호 작용으로 이뤄지며, 유전자를 둘러싸고 있는 세포 내 환경을 비롯해 사회적 물리적 환경에도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복잡성 때문에 급진적인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일지라도  포스트 휴먼과 같은 일들이 단기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어쩌면 이것은 단순히 얼마나 시간이 걸리냐의 문제라기보다는 현재의 시간을 ‘인간 탄생의 시점’으로 되돌릴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는 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모르고 인간을 조작한다는 것 자체가 많은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암의 원인을 알아야 암이 치료가 되듯이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을 치유하려면 인간이 인간이 된 이유를 아는 것부터가 순서일 것이다.

요컨대, 최근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현재 논란이 일고 있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각계각층의 의견을 실으며 이렇게 끝맺었다. “생명 공학의 혁명으로 후쿠야마는 우리가 ‘역사의 종언’에 달했다는 주장을 수정하게 됐다. 역사는 계속된다, 과학자에 의해서. 이런저런 논란이 있지만 생명공학이 구시대의 질서를 붕괴시키고 새 질서를 창조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구미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