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있었던 일이다. 술에 만취하여 욕설까지 해대고 있는 어느 50대 남자를 오해하여 실수를 저지른 일이 있었다. 그는 내가 배달하는 신문이 아닌 다른 신문을 보고 있었는데 그가 내 오토바이 옆에 있어서 내 신문을 가져간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나는 바로 실수임을 알아차리고 사과했으나 그의 표정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분노에 차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왜 니거야, 난 여기서 길에 떨어진 걸 주운거야!” 나는 얼른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거듭 사과한 뒤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그가 출발하려는 오토바이를 잡아당겼다. 순간 넘어질뻔 하게 되자 나도 화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오토바이에서 뛰어내리며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오토바이를 잡아당기면 어떡합니까?”라고 하자 그는 “왜 나를 도둑놈 취급하는 거야! 내가 언제 네 것을 가져갔어?” 하며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사태는 이미 수습할 수 없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멱살을 쥐고 엎치락 뒷치락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나의 공격에 위협을 느꼈는지 필사적으로 나의 얼굴에서 안경을 빼서는 움켜 쥐었다. 나는 금방 그의 손을 비틀어 안경을 빼앗았으나 이미 안경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점점 더 화가 나기 시작했다. 마음 같아서는 안경을 부러뜨린 응징으로 그를 늘씬하게 패주고 싶었으나 또 한편으로는 후회가 되기도 했다. ‘괜히 건드렸구나! 처음부터 외면할 걸. 신문 한 장 때문에 배달시간에 배달도 못하고 안경도 부러지고 이게 무슨 꼴이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그를 달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는 내가 안경이 없어 힘을 못쓴다고 생각했는지 나의 목을 조이고는 경찰서에 가자고 했다. 나는 그쯤에서 그만두고 싶었으나 그의 경찰서 가자는 말에 오기가 생겼다. “그래 경찰서 가자, 안경값 받아야 되겠어. 안경을 부러뜨린 것은 살인미수라는 걸 알아야지, 가자! 경찰서가 어디야?”

나는 그를 끌고 그 자리에서 40m 쯤 걸어갔다. 그러자 그가 갑자기 “잠깐만” 하면서 운동화 끈을 묶기 시작하였다. 괜히 멀쩡한 운동화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 것이 ‘살인미수’라는 말을 의식하는 듯 보였다. 줄곧 벗어날 기회만 엿보던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40m 거리를 질주하여 오토바이에 뛰어올라 그 자리를 벗어났다. “아, 괜한 시간 낭비에다 안경만 박살 났구나!”

그 날 나는 안경이 없어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배달을 마쳐야 하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였다. “누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해도 꾹꾹 참고 무반응 무응답으로 일관하는 것이 ‘나’라는 자존심을 죽이는 길이요, 자존심을 죽이는 것이 나를 죽이는 법”이라는 주님 말씀이 뼈저리게 다가왔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