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계 이황의 제자인 김성일이 퇴계에게 물었다. “선생님, 이치(理)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에 대해 퇴계는 이렇게 말했다. “알기 어려운 듯하지만 사실은 쉽다. 옛 선비들이 ‘배를 만들어 물을 건너고 수레를 만들어서 땅위를 다닌다.’고 한 말을 잘 생각해보면, 나머지는 다 미루어서 알 수 있을 것이다.”

배로는 물을 건너야 하고, 수레로는 땅위를 다녀야 하는 것은 이(理)이다. 그러나 배로 땅 위를 다니고 수레로 물을 건너는 것은 이(理)가 아니다. 임금은 어질어야 하고 신하는 공경해야 하며, 아버지는 자애로워야 하고 자식은 효도를 해야 하는 것은 이(理)이다. 그러나 임금이 어질지 아니하고, 신하가 공경하지 아니하며 아버지가 자애롭지 아니하고 자식이 효도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이(理)가 아니다. 천하에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은 모두 ‘理’이고,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理’가 아니다.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면 참된 ‘理’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땅히 그러해야 하는 것’ 아마도 이것은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란 뜻이요,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똑같이 공감하는 것이란 뜻일 것이다. 항상 책을 읽을 때 단정히 새벽에 일어나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무릎을 꿇고 책을 읽었다고 하시는 퇴계는 진리를 추구하는 학자로서의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김부륜이란 제자에게 말씀하셨다고 전한다.

“내 비록 늙고 아는 것은 없지만, 다만 젊을 때부터 성현의 말씀을 독실하게 믿어서 세간의 비방이나 칭찬, 영화와 욕됨에 구애되지 않았으며 또 별난 주장을 하여 사람들로부터 괴이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았다.”

만약 학문을 하는 사람이 비난이나 칭찬, 영광과 욕됨을 두려워한다면 자신의 뜻을 세울 수 없다. 또 안으로 충실한 공부를 하지 않고 갑자기 별난 주장을 하여 남들로부터 괴이하다는 지탄을 받는다면 스스로를 보전할 수 없을 것이다. 요컨대 학문을 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꿋꿋해야만’ 비로소 근거하여 지킬 바가 있게 된다.

참다운 종교는 <진리>의 완성이며 그 진리를 자신의 마음 속에 구현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꿋꿋해야 하며, 한가지 말씀이라도 그 말씀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마음으로 깨닫고(心得) 몸으로 얻어서(體得), 성현들이 남긴 진리의 말씀과 그 깨달아 아는 것이 ‘공명’되어야 한다.

그 앎이 실천을 통해 ‘동서양과 시공을 꿰뚫는 중심’이 되어 내 안에 오롯이 섰을 때, 그는 칭찬이나 비난에 얽매이지 않고 꿋꿋하게 신념을 밀고 나갈 수 있다.

“모든 중생들에게 불성(부처의 성품)이 들어있다”는 금강경의 말씀을 듣고 불가에 출가하여 선종의 6대 종사가 되는 혜능의 일화는 참 진리를 깨닫고 아는 것이 지식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음을 알게 한다.

그렇다! 모든 생명이 있는 존재들에게는 佛性(부처의 성품)이 있다. 이것은 진리요, 이것이야말로 통시대적인 진리다.!

휴정대사가 지은 <선가귀감> 첫 장에는, “한 물건(一物, - 佛性이라고도, 道라고도 一太極이라고도 불리는 그 무엇)이 여기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밝으며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워 일찍이 난 것도 아니고 일찍이 죽은 것도 아니어서 이름 지을 길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라는 말씀이 있다.  

이와 상응하는 말이 노자가 지은 <도덕경> 첫 장에 “道라고 말하면 그것은 원래 모습의 道가 아니요, 만물에 이름을 붙이면, 그것은 원래 존재의 이름과는 다른 것이 된다.” 라는 말씀이 있는데, 위의 두 말씀을 짝지어 보면 이 시대를 사는 참 진리가 무엇이고 삶의 참 잣대가 무엇인지를 바로 세울 수가 있다.

모든 존재의 근원, 바로 그 근원이 시작되기 이전의 존재는 <밝고 밝으며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운> 것이었다. 그 존재에 대해 佛性이니 道니 하나님이니 빛이니 하는 이름을 붙였지만 그것은 “어떤 이름으로도 불릴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어떤 이름도 아니다.”

그 신령한 존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하나>의 존재였다. 그 신령한 존재로부터 음양과 만물이 생겨났음에, 모든 생명체 속에는 신성함이 깃들어 있으며 그 신성한 존재는 “본래부터 하나” 였기에, 뭉치고자 하는 속성이 있고, 하나가 되려고 하는 속성이 있고, 기쁨과 아픔, 즐거움과 괴로움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성품이 있다.

그 신성한 존재가 마귀에게 포로로 사로잡힘으로써 모든 만물이 생겨났음은 격암 남사고 선생이 남기신 <격암유록>의 ‘도부신인’편에도 있거니와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 동물, 식물, 미생물, 공기까지도 ‘밝고 밝으며 신령스럽고 신령스러운’ 존재로부터 파생되었으며, 그 신성한 존재가 사람을 중심으로 모든 만물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모든 사람들을 ‘한 몸’으로 여길 수 있는, 아니 여겨야 하는 당연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으며, 모든 인류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요컨대, 우리는 세계 종교와 학문을 하나로 만들고, ‘누구든지 한 몸으로 만드는’ 거대한 하나님의 진리 중심에 서 있다. 새해 2005년은 마땅히 우리가 온 우주와 온 인류를 하나로 만드는 하나님의 자유율법을 몸소 실천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실천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여기 이 거대한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흠 승사